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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님!

나를 두목님이라고 부르는 아이

by 강석효

두목님!


그 애는 나를 두목님이라 불렀다.
처음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두목님! 제가 만들었어요!”
“두목님!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어요!”
목사라는 말은 아직 낯설었을 테고,

‘두목님’이라야 뭔가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되받아쳤다.

“왜, 똘마니?”
아이의 눈이 호방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한편이 따스해졌다.


성민이는 아홉 살, 송아는 일곱 살.

남매는 영오 신흥 갓바위 마을 들녘 끝자락,

아빠가 마련한 열 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다.

아빠는 막노동을 한다. 멀리 강원도로, 또 어디로든 일거리가 있다 하면 기꺼이 떠난다.

그러면 남매는 둘이서 지낸다. 아빠가 없는 밤, 달도 바람도 가끔은 무서운 친구가 되는 그런 시간들.

“무섭지 않아요. 먹을 것도 내가 챙겨줄 수 있어요.”
성민이는 또박또박 말한다.

그 말속엔 의젓함도 있고, 어쩌면 씩씩함으로 위장한 고요한 외로움도 깃들어 있다.


아침이면 동네 적십자 부녀회에서 오신 아주머니가

컨테이너 문 앞에 조심스레 놓고 간 도시락을 먹고,

아이들은 학교까지 두세 킬로미터를 걷는다.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오후엔 아동센터로 온다.

이곳이 이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집이다.

숙제를 하고, 놀이를 하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그러다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을 하나둘 집에 데려다준다.

마지막은 늘 성민이와 송아.
논길을 지나고 강둑을 따라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아이들은 차 안을 작은 놀이터로 만든다.
“치킨!”
“킹크랩!”
“애플!”
“풀잎!”
끝말잇기 하나로도 이 남매는 얼마나 많은 상상의 숲을 헤매고 다니는지,

그 옆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고, 논에는 짙은 안개가 스며든다.
“두목님, 안녕히 가세요…”
“그래, 동생 잘 챙겨주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거라…”

남매는 손을 흔들고, 나는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들어간 뒤에도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서서 강가를 바라본다.

중대머리백로와 왜가리가 긴 날개를 펴고 저 멀리 둥지를 향해 날아오른다.

어둠 속에서도 하늘은 멀지 않고, 논두렁 불빛은 별처럼 반짝인다.

내일이면 아빠가 돌아오신단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을까.
오늘 밤 성민이와 송아는 서로 등을 기대고 누워 예쁜 꿈을 꿀 것이다.
마음 한편이 조용히 말한다.
그 아이들이 꾼 꿈이
그들의 삶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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