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로 살아라

로마서를 마치며

by 강석효

마서 설교를 한 장 한 장 풀어내며 달려온 이 몇 달은, 길고 깊은 산길을 천천히 오른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가파른 오르막도 있었고,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서야 했던 골짜기도 있었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그 모든 길이 결국 한 줄기 은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 특유의 은근하고도 단단한 이끌림이 그 길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로마서 강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참 고맙다’는 마음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앉아 말씀을 듣고, 고민하고, 때로는 답답해하고, 그러다 다시 은혜라는 한 줄기 빛을 따라가던 그 모습들이 작은 난로처럼 따뜻했습니다. 바울의 문장은 늘 쉽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칼처럼 차갑고, 때로는 품 안에서 오래 끓인 보리차처럼 따뜻했지요. 그런데 그 어려운 말씀을 성도들이 함께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묵혀놓은 마음들을 조금씩 비워가는 모습을 보니, 설교를 준비했던 시간들이 허투루 지나간 것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를 한 번도 쉬운 골목으로 데려다주지 않았습니다.문제 앞에서 철저히 낯 뜨겁게 만들고, 은혜 앞에서는 또 어쩔 줄 몰라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다며 으스대던 자리를 모조리 무너뜨려 놓고, 결국엔 “도무지 내 힘으로는 아니다. 오직 은혜뿐이다”라는 자리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복음의 자리라며, 바울은 끝까지 거기에서 우리 발을 떼지 못하게 붙잡아두었습니다.


설교를 하며 내가 가장 많이 깨달은 것도 그 한 가지였습니다. 복음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것. 복음은 삶의 한가운데서 묵묵하게 버티며 우리를 살려내는 힘이라는 것.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죄에서 건져내시는 은혜는 언제나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로마서를 읽고 설교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조금씩 굳어져 있던 교만과 의로움을 조심스레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로마서 설교를 조용히 덮으며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집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몸은 편안해지는데 마음은 괜스레 휑해지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이 열리듯이, 말씀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가 우리에게 남긴 진실,

“오직 은혜로 살아라, 그리고 그 은혜를 사랑으로 흘려보내라.”

이 한마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는 끝났지만, 복음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일의 일상 속에서도, 조용히 기도하던 새벽에도, 뜨거운 해 아래 밭을 매던 오후에도, 누군가를 용서하려 애쓰던 저녁에도, 로마서가 전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끝에서 이렇게 속삭여봅니다.

“로마서는 덮었지만, 복음의 삶은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이 말씀이 성도들의 발걸음 위에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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