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것도 아파하는 것도 함께

성경 욥기와 함께 걷는 산책

by 강석효

언젠가부터 나는, 인생이 꼭 한 줄로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행복은 행복대로 반짝이는 날이 있고, 아픔은 아픔대로 문득 찾아와 자리를 차지한다. 마치 늦가을 볕 아래 서로 다른 색깔로 익어가는 감나무와 은행나무처럼, 따로 있으면서도 한 풍경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욥기서를 읽다 보면, 나는 종종 오래된 시골마을의 저녁을 떠올린다.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밥 짓는 냄새와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뒤섞여 있는 그 순간 말이다. 따뜻해야 할 풍경 속에서도 어느 집에는 울음이 있고, 또 어떤 집에는 웃음이 있다. 삶이라는 것은 참 이상해서, 늘 그렇게 아픈 것과 행복한 것이 이웃집처럼 붙어 살아간다.


욥은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사람이다. 의롭고 성실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를 고난의 한복판으로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고난에는 꼭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죄를 지었거나 잘못을 심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욥의 아픔은 아무런 연유도 없이 밀려온, 설명하기 난감한 고난이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우리 인생의 많은 아픔이 그러하듯.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지 않았다. 마음을 쥐어짜는 듯한 질문을 하면서도, 그 질문을 하나님께 던졌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프면서도 엄마 품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그는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 모습이 왜인지 마음을 오래 붙든다. 믿음이라는 게 어쩌면 그런 애틋함인지도 모르겠다. 도망치지는 않되, 따져 묻고, 서러움을 토해내고, 그럼에도 다시 하나님을 찾는 일.


하나님은 한참을 침묵하셨다. 침묵이 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그런데도 그 침묵 속에 하나님은 가까이 계셨다. 그것을 욥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마침내 하나님이 입을 열고 말씀하시는 순간, 욥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의 고난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부여잡고 계시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다 그렇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따져 묻고 싶은 날이 있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때 내 곁을 지키던 하나님의 숨결이 더 크게 느껴진다. 눈물을 닦아주던 손길이 뒤늦게 보이듯, 어느 겨울 지나고 난 뒤에야 들판에서 푸릇하게 올라오는 새싹을 보듯.


아픈 것과 행복한 것은 늘 한 집에 산다. 어느 날은 아픔이 앞마당에 먼저 나와 앉아 있고, 또 다른 날은 행복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하나도 영원히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둘이 함께 우리의 마음을 빚어간다. 아픔은 사람을 깊어지게 하고, 행복은 사람을 부드러워지게 한다. 두 손이 번갈아 가며 질그릇 하나를 만들어 내듯,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셔서 우리를 완성해 가신다.


그래서 욥의 마지막 고백은 눈부시다.
자신이 몰랐던 길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셨다고.

우리도 그 고백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픔이 찾아올 때도, 행복이 찾아올 때도, 그 둘 너머에서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일.


그래서 오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말해본다.
“주님, 저는 다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저를 아십니다.”
그 고백 하나로 삶은 다시 견딜 만한 온기를 찾는다.

그리고 아픈 것과 행복한 것이 함께 우리 곁에 앉는 이 묘한 풍경 또한,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한 페이지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전 12화악양 마을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