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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자라난 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by 강석효

이었다. 햇살은 아직 어린 손처럼 부드럽고, 바람은 들판의 냄새를 실어 나르던 때였다. 그날 한 남자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우리 교회로 들어왔다. 얼굴엔 세상의 풍파가 묻어 있었고, 손끝에는 흙냄새가 배어 있었다.

“목사님, 나는 맨날 일하고 술밖에 몰라서… 목사님한테 애들 데리고 가면 돌봐준다카더만, 내 새끼 좀 잘 부탁드립니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정환이었다. 금곡 석계마을, 밤나무밭이 끝나는 언덕 아래 허름한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 집엔 웃음소리보다 빗소리가 더 자주 들렸고, 밥 냄새보다 흙냄새가 짙었다.


처음 본 정환이는 마치 긴 겨울을 홀로 견뎌낸 새싹 같았다. 창백한 얼굴, 마른 몸, 말수는 적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유난히 맑았다. 그 해 여름이 오기 전, 정환이의 생일이 다가왔을 때 교회에서 조그만 케이크를 준비했다. 아이는 촛불을 켜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렸다.

“태어나서 생일 축하받아본 적 처음이에요. 케이크도 처음 먹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자란다는 건,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기억되고 축하받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졸업식 날, 부모님께 감사의 꽃을 드리는 순서가 있었다. 얼마 전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기에, 나는 마음이 저려왔다.

그런데 정환이는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품에 안긴 꽃다발을 내밀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피붙이의 자리를 대신해 누군가에게 감사할 줄 안다는 건, 이미 마음이 깊이 자란 증거였다.


정환이는 그렇게 교회에서 자란 아이였다. 마치 엘리 제사장 곁의 사무엘처럼, 묵묵히 예배드리고, 꾸준히 기도하며 자랐다. 믿음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그 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이제는 스무 살, 키도 훌쩍 크고 어깨가 듬직한 대장부가 되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일하며, 땀으로 하루를 일군다. 그럼에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이 시골 교회를 찾아온다.

“정환아, 힘들지 않니?”

그러면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집에 오는걸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린다.

누군가에게 교회가, 하나님이, 그리고 우리가 “집”이 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삶이란 결국,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아버지가 잡아주던 그 손이, 세월이 흘러 하나님이 내밀어주시는 손으로 바뀌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신앙이란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외로운 손을 놓지 않는 일이다.

정환이는 내게 참 믿음을 가르쳐준 아이였다.

그리고 그 아이 덕분에, 나는 오늘도 믿음의 길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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