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는 흙 묻은 손끝에서 자란다
우리 교회에는 우렁각시가 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니신다고 해야 할까.
주일 예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교회 정원이 달라져 있다. 그새 자라난 잡초들은 온데간데없고, 화단의 흙은 고르게 다져져 있으며, 무거운 돌 사이로 제멋대로 뻗던 풀잎들도 단정히 눕혀져 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은 없는데, 결과는 분명하다. 깔끔하다 못해 정갈하다. 마치 새벽녘에 천사가 내려와 빗자루를 들고 다녀간 듯하다.
사람들은 그저 “요즘은 풀이 안 자라나 봐요” 하며 지나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사람의 손이다. 그것도 땀에 젖고, 흙 묻은 손.
오전 햇살이 막 교회 담벼락을 비출 때, 조용히 와서 허리를 굽히는 이가 있다. 바람이 불면 삐걱거리는 허리 대신 낫이 풀잎 사이를 스친다. 그리고 해가 기울 무렵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나는 그를 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다.
“목사님, 그냥 그렇게 알아주세요.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고 싶어요.”
그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 그 따뜻함이 눈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다녀간 자리에는 잡초보다 먼저 평안이 피어난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속까지 정리된다.
신앙이란 게 꼭 대단한 설교나 눈부신 사역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우렁각시가 몸으로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믿음의 열매’를 말하지만, 그 열매는 때때로 흙 묻은 손끝에서 자란다.
비밀스러운 섬김, 이름조차 감춘 사랑, 그건 세상의 어떤 장식보다도 빛난다.
하나님 앞에서는 화려한 포장보다 그 조용한 발자국 하나가 더 귀한 법이다.
어쩌면 교회의 정원을 가꾸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건, 누가 그 일을 했는지 모른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드러나지 않아도, 정원은 그를 기억한다.
새벽이슬이 맺히면 흙은 속삭인다.
“오늘도 그 손길이 다녀갔구나.”
나는 그 정원을 바라보며 문득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교회 안에 이런 우렁각시 같은 이들이 많아지게 해 주세요.
드러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사랑으로 세상을 가꾸는 손길들이.”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좋다.
이미 하나님은 아신다.
그 손끝에서 자란 사랑의 꽃이, 오늘도 교회 마당 한가운데 조용히 피어나고 있으니까.
마태복음 6장 3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