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교회 속회풍경
추석 내내 흐리던 하늘이 그날만은 유난히 높고 파랗게 열렸다. 문산으로 향하는 길가엔 황금빛 들녘이 바람결에 파도치듯 물결을 이루었다. 벼 이삭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창을 스치던 그 소리엔 감사가 섞여 있었다. 오랜만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속회로 향하는 길,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날씨 같았다.
문산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니, 1층 입구에서 안화선 집사님이 환한 얼굴로 서 있었다. 혹시라도 어르신들이 길을 헤맬까 봐, 집사님이 먼저 나와 마중을 서신 것이다. 그 모습이 참 곱고 따뜻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기다림에도 사랑이 있고, 섬김에도 예의가 있다는 걸 그 순간 새삼 배웠다.
박희상 권사님과 안신자 집사님 부부는 그날 하루 종일 분주했을 것이다. 어르신들을 위해 집 안을 단정히 정리하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손끝이 쉴 틈이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피곤이 아니라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에는 사랑의 기쁨이 있었다. 섬김이란 억지가 아니라, 사랑이 흘러넘쳐 스스로 흘러나오는 행위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성경 속에도 자신의 집을 예배의 처소로 내어 놓은 사람들이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뵈뵈가 그렇다. 그들은 부요하지 않아도 마음이 넉넉했고, 유명하지 않아도 믿음이 깊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했다. 오늘 이 문산의 18층 가정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들의 식탁 위엔 단지 음식이 아니라, 복음이 놓여 있었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도착하셨다. 낯익은 얼굴들, 세월의 주름마다 신앙의 이야기가 깃든 손님들이었다. 권사님 부부는 한 분 한 분 손을 맞잡으며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속회 예배가 끝나고, 따끈한 국과 정갈한 반찬들이 식탁 위에 오르자, 방 안이 금세 웃음으로 가득 찼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건 결국 밥 한 그릇의 정이었다.
식사 후엔 준비한 작은 퀴즈와 선물이 있었다. 어르신들의 웃음이 아이들처럼 해맑았다. 누군가의 웃음이 방안을 가득 채우자, 그 자리에는 하늘의 평안이 내려앉는 듯했다. 믿음의 공동체란 이런 게 아닐까.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남의 기쁨을 함께 즐거워하는 그 단순한 마음 말이다.
저녁 8시, 모임을 마치고 아파트를 나오니 하늘이 이미 어둑어둑했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단지의 창가마다 하루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문산의 가을밤은 그렇게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러나 마음엔 잔잔한 울림이 오래 남았다.
어떤 봉사는 화려하지 않아도 깊다. 오늘 그 부부의 섬김과 안화선 집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한 일이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 하나님이 계셨다. 누군가는 그저 식사 한 끼라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그것이 사랑의 예배요, 향기로운 제사였을 것이다.
바람이 다시 불어 들녘의 이삭이 흔들렸다. 누군가의 작은 사랑이 세상을 이렇게 부드럽게 흔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저렇게, 내 곁의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내어 놓는 일—그것이 곧 복음이었다.
오늘 문산의 아파트 18층에서 피어난 그 사랑의 향기가,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