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세상에 좀 있어야지

욥기를 읽다가...

by 강석효

욥기 2장 3절을 읽다 보면
말씀의 내용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투가 마음에 걸린다.


“내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이 문장에는 책망도 없고,
판결도 없다.
오히려 뿌듯함이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의 행복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 사람은 남아 있구나.
그래도 이 사람은 끝까지 서 있구나.


욥은 하나님께
그런 존재였다.
생각하면 자랑스럽고,
떠올리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


우리가 보기에도 욥은
살얼음을 걷듯 아슬아슬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순간 방심하면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좀 있어야지.”


저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놓이고,
저 사람이 있으니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저 사람이 있으니 맡겨도 괜찮은 사람.


반대로 세상에는
조바심으로 지켜봐야 하는 사람도 많다.
매일 살얼음 걷듯이 바라봐야 하고,
도무지 아무 것도 맡길 수 없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은 이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욥은
하나님이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믿고 다시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고 있느니라.”


욥은 설명이 없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무게라는 사실을 그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바람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고 서 있는
오름직한 동산처럼.


우리는 고백한다.
믿을 만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고.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 더 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쯤이면

하나님이 보실 때


“안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안기지만
어른은 등을 맡긴다.

신앙도 그렇다.


처음에는 업혀 가는 믿음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맡길 수 있는 믿음으로
자라가야 할 때다.


오늘,
하나님이 나를 보시며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그래,
그런 사람이 아직 있구나.”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앙은 이미 충분히 깊어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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