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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의 근위병

강렬하고 아름다운 2인극

by 수형

‘나를 찾아가는 2인극 연기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반가운 작품을 만났다.
바로, 타지마할의 근위병.
이야기 설정과 주제가 마음에 깊이 와닿아 일찌감치 예매하고 공연장을 찾았다.


2025.11.12.(수) ~ 2026.01.04.(일)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연출 신유청 / 출연 최재림, 박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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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바그다드 동물원의 뱅갈 호랑이>로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극작가 라지프 조셉의 작품으로, 2015년 6월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배경은 17세기 인도 아그라.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건축한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그곳을 지키는 두 근위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출한 무대에서 권력과 아름다움, 책임과 자유라는

묵직한 질문이 관객에게 여과 없이 던져진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는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이 다시는 세워지지 않도록

건축에 참여한 기술자 2만 명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기록은 아니지만, 오래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은 전개된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황제의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그 사랑은 욕망으로 비틀리고 권력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결국 황제의 명령을 집행해야 하는 두 근위병은

‘권력’과 ‘아름다움’, ‘책임’과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무너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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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거의 ‘빈 무대’에 가깝다.

세 면을 둘러싼 검고 높은 벽은 1막에서 어두운 광장이었다가, 2막에서는 지하 감옥이 되고,

때로는 숲으로 둘러싸인 그 어느 곳이 되기도 한다.

벤치 크기의 나무 구조물 두 개는 장면에 따라 기술자의 손을 자르는 형틀로 변주된다.

간결하지만 강렬한 무대다.


1막의 마지막 장면, 근위병들이 타지마할의 건축을 바라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타지마할 묘역이 완성되고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까지는

타지마할을 등지고 근무를 서야 할 뿐, 절대로 뒤돌아 건축물을 봐서는 안 되지만,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근위병은 들고 있던 칼도 떨어뜨리며 황홀경에 빠진다.


무대 위로 타지마할 묘역의 그 어떤 형상조차 보이지 않지만,

관객은 배우들의 몸짓과 호흡, 조명과 음악의 조합을 통해

타지마할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연출이었다.


2막이 되면 무대는 순식간에 처참한 형장으로 전환된다.
무대 바닥을 가득 채운 물은 배우들이 감정의 극한을 신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장치였다.
질퍽한 바닥 위에서 정신을 잃은 듯 몸을 끌고 가는 두 배우의 움직임은

이 공간에서 조금 전에 있었던 핏비린내 나는 참혹한 현장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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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 동안 두 배우는 넓고 높은 무대를 완전히 점유했다.
그 힘은 탄탄한 대본, 정교한 연출, 진정성 있는 연기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무엇보다 이 극은 2인극이 얼마나 깊고 넓게 확장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완성도 높은 2인극이었다.


또 다른 배우들의 조합은 어떤 무대를 만들까.





*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황제의 뒤틀린 명령은

이미 아름다움과 예술을 망각한, 권력자의 탐욕과 허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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