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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시르 Apr 08. 2024

로맨스 I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정의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마이클샌델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세계적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증명할 수 있다.


정의에 대하여 쉽게 접근해 보면 "법, 도덕, 윤리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은 "법, 도덕, 윤리"는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며 중요시하는 관점도 다르다. 상대적이라는 의미는 다시 말하면 정의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음주 운전자에게 치여 숨을 거두었다고 가정하면 피해자의 슬픔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해자의 가족은 누구를 걱정하겠는가? 피해자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겠지만 결국 나의 가족 걱정을 먼저 하는 것이 사람이다.


또 반대로 피해자는 가해자의 가족들에 걱정을 해줄 수 있는가?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에 집중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럴 여력이 없을 것이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 정이인가요? 복수를 하고 싶은것이 정의인가요? 그런 가해자는 사고가 날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제삼자는 심지어 음주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해자를 욕하고 피해자를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을 함께 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다.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 속에서도 복잡한 상황과 관계가 얽혀있고 생각하는 감정이 모두 다른데 무엇을 정의라고 규정하겠습니까?


로마서(Romans)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율법은 그것을 지켜 행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하여 죄인 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결국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며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은 모두 지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음을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며 100세가 다 되었는데도 아들을 주시겠다고 한 것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명령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일을 행하여서 또 다시 의로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확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법, 도덕, 윤리와 같은 잣대들을 지켜서 의롭다고 말한 사람이 없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뜻은 율법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혹시 선한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의로운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의롭다고 이야기 한 영웅들을 생각해 보니 그들에게 구원을 의지 할 뿐 대신 죽겠다는 마음조차 갖지 못할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로움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음까지 이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모두 지킬 수 있다고 한다면,

"믿음"이라는 의미와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하나님의 "약속"도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 믿음은 죽음이 결코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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