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시르 May 04. 2024

세상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 (11편)

하나님이 안식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죄가 온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네 몸과 마음을 다하고 힘과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데 육신의 몸을 가진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몸과 생각이 앞서 있으며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도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것을 의식하여 거룩한 모습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 학자들은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며 살아갔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 학자들 그리고 부자들은 율법을 모두 지켰다고 스스로 이야기했습니다. 율법을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는 하나님이 평가하는 일임에도 스스로 지켰다 말하면서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복음 2장 16-17절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명확하게 예수님은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오셨으며 스스로 깨끗하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생각으로 율법을 대하는 자를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생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책이며 그 방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육신 안에서 죄에 갇혀 있는 사람임을 율법을 통하여 깨닫고 죽어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회개하는 자에게 행복을 주시고 새 하늘 새 땅에 상속자로 생명책에 기록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는 정의를 말하고 스스로의 생각이 옳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틀리다고 말하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것은 많이 배우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일수록 심한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웠기 때문이며 많이 알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일 옳다고 믿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매우 현실적이며 논리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로마서 3장 18-19절

18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19 우리가 아는 대로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래서 아무도 변명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20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뿐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8  한 유대인 지도자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그래서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20 너는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 증언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계명들을 알고 있겠지." 

21 그러자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하였다.

22 예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3 그러나 그는 큰 부자였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몹시 근심하였다.

24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주신 것이며 율법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깨닫기 위하여 주신 것임에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지켜야 할 것이 많아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죄책감을 가지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의로운 모습으로 보이길 원하는 시선과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마음이 우리가 더 의롭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요?



스스로가 율법을 지키며 거룩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선한 사마리아법으로 유명한 성경구절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보았을 때 자신이 위험에 빠질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처벌을 받게 하는 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비유입니다. 생명을 얻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불쌍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생명을 얻었나요? 

아니면 강도 만나 거의 죽은 상태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생명을 얻었나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서도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상상하며 보고 있는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며 그런 삶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비유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은 강도(사탄이 임금 된 나라)에서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성령의 기름과 그리스도의 피(포도주)로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이 영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의인되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며,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의 모습으로 전도하고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이 나타나길 바란다면 더 악한 길로 가는 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23장

15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 위선자들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돌아다니다가 얻으면 너희보다 배나 더 악한 지옥 자식으로 만든다.


마태복음 7장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떼와 같다.


고린도후서 11장

13 그들은 거짓되고 속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사람들입니다.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생명은 오직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의 믿음과 그리스도의 믿음이 결합되는 은혜의 선물로만 가능합니다. 


성경을 읽고 알아가면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들어서 혹시 거짓 예언자가 되지는 않을까 두렵고 떨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탐구하고 교회와 교제 속에서 올바르게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할때에 진리의 성령님이 교제 가운데 오셔서 깨달음을 주실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 할 수 있으며 잘못 전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해석하고 전파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도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면 성경 학자들처럼 설명하지 못하고 비록 해석이 틀렸다고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또 성경 학자들이 사람을 살리는 것에 관심이 없고 교회 건물이 잘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예수님 비유에 보면 제사장과 레위인을 사람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 (10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