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적으로 보아도 선진국은 출산율이 낮고 개발도상국들은 출산율이 높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맞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도 어쩌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선진국은 놀거리, 먹을거리, 즐길 것이 많기 때문에 이것을 누리기도 바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눈을 떠서 누구보다 땀 흘려 일하느라 고생하지만 막상 즐길 것이 없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돈독하거나 간통, 약탈 같은 관계적 쾌락만이 유일한 즐길거리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고 그들은 힘든 삶에 방치되어 자라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출산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물으면, 자신을 돌아보며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를 바라보며 탓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틀리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들지 않고 열심으로만 키우라고 하면 예전처럼 7-8명씩 낳아서 키우실 건가요? 저는 싫습니다. 이유는 제가 힘들기 때문이며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잘 양육할 자신이 없습니다.
삶의 풍요와 넉넉함 속에서 전해지는 총성 없는 팍팍함은 오히려 자유를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유는 인간은 완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평화, 풍요로움, 넉넉함이 없고 불완전한 상태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더 답답한 것이지요.
성경에서는 출산에 대해 어떤 것을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싶은지 찾아보고 나누어보겠습니다.
성경은 완전한 때에는 출산의 기록이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나서 출산의 기록이 130년이라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최대 130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에덴에 있었고 인간적 육체관계보다는하나님과의 관계만으로 기쁨과 쾌락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완전한 때가 오면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때로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이 어쩌면 성경적 원칙이라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덴에 쫓겨나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저는 성경에서 여자라고 있으면 실제 여자를 말하는 것인지,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분별하며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자에게 고통과 수치심과 연약함을 이야기하면 모두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임신의 고통은 산통을 말해주는 것도 있지만 전도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임신과 출산은 전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을 때에 여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에 괴로운 시간이라는 것을 짐작을 할 뿐 공감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를 소개하고 말씀을 가르쳐서 임신을 하고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과 수고가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게 되고 그것을 말할 때마다 받는 마음의 상처들이 있으며 믿지 않는 자들에 반응보다 예수 안에 있고 믿음이 있는 자들의 반응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임신하고 자녀가 된다는 것은 믿는 사람을 낳는 과정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임신할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5장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그리스도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여기서 박해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잘 알아서 율법을 신처럼 지켜온 바리새인들이 박해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빌라도는 사실 예수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임신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고통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아는 사람을 임신하는 고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일하실 잃어버린 양들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보고 슬퍼하시고 그 양 찾기 위해 일하시며 졸지도 아니하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 주께서 사람을 쓰시기도 하지만 전도의 핵심은 예수를 믿는 자안에서 임신하는 고통과 수고로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보다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그 뒤에 자녀는 하나님이 키우시며 일하시기 때문에 지난 고통이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됩니다.
실제 육으로 낳는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세상의 다른 기쁨들로 인해 해산하는 기쁨보다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영으로 낳는 출산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가는 길에 울고 있는 여자들에게 날이 이르게 되면... 예언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완전한 때가 오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신하지않은 여자가 복이라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보면 이미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마치 자녀를 낳는 것이 저주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영으로 보면 더 이상의 출산 전도는 없다는 뜻으로도 보입니다.
완전한 때가 이르면 출산을 하지 않습니다. 출산이 사라지는 것은 전도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우리가 아는 사랑만 남고 임신을 하지 않아 부분적인 것들이 사라지는 날에는 어떠한 영광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