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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의 은혜

by 케이시르

오늘은 낯을 보는 것에 대하여 올해 마지막 글을 쓰려고 합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낯가림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낯은 환경에 의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잘났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낯을 가리는 것이 조금씩 사라지게 되고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낯가림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내가 판단하기에 어떻게 볼 것 같은지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있었습니다. 남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나의 나됨이 가진 것이 없었으며 키도 작고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 없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내 자리 주변에 웃긴 친구들이 있었는 데, 매일 똑같지도 않은 성대모사를 서로 똑같다며 함께 깔깔되며 놀았습니다. 우리끼리 똑같다며 웃으니 다른 친구들도 그런가? 하며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고 똑같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우리끼리 똑같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개의치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씩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웃기다며 칭찬을 받으며 크게 되었습니다. 공부도 아주 잘한 것은 아니지만 앞가림할 정도로 배워서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름을 알만한 회사에서 AI관련 개발 일을 하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오늘도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제법 괜찮았던 나였지만 교만과 자만으로 큰 어려움을 겪다 보니 다시 낯을 가리는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출근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사람들을 보는 것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며 사람을 이해하긴 했지만 사람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낯가림은 더욱 심해져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낯가림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말씀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하나님의 첫 번째 아들 아담은 먹지 말라고 했던 열매를 먹고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 후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매일 하나님과 거닐던 아담이 하나님의 소리에 부끄럽고 두려워 낯을 가리려고 숨었죠. 그는 스스로 지은 옷을 입었지만 벗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은 한순간에 실수에 의해 낯가림이 없던 사람이 낯을 가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가리고 비누로 손을 몇 번씩 씻어봐도 바뀌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2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만든 옷으로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었기 때문에 아담은 숨었던 것이지요.




창세기 3:21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을 입고 나서야 낯가림이 사라지게 되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는 어려운 말씀을 하셨는 데, 첫 번째는 나의 나 된 것을 잃었다는 뜻이며 에덴에 있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는 천사처럼 누구는 사탄처럼 영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겠죠.


만약 아담이 스스로 지은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낯가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져 있을까요? 저는 아마 새 옷을 입히시지 않고 죽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은 낯을 가렸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성경은 우리의 낯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세기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출애굽기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아담과 가인은 하나님의 낯을 피했던 사람이고, 야곱과 모세는 사람의 낯을 피한 사람이지만 모두 낯가림으로 인해 살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 곁에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합니다. 야곱과 모세는 하나님 곁에 있을 것 같고 아담과 가인은 결국 멸망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죠.




구약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낯을 피해 도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 바뀐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의 낯가림이 사라졌다는 것이죠.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는 낯에 대한 말씀이 1개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매우 놀랐습니다. 낯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5장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예수님이 한날한시에 만난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명은 회당장이라고 하니 낯가림이 없는 신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12년 동안 혈루증 자궁에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이며 12년 동안 이 병을 고치느라 모든 재산을 탕진한 여인이니 낯가림이 심할 수밖에 없죠.


낯가림이 없는 회당장은 예수님 앞에 엎드렸고, 낯가림이 있는 여인은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에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에는 예수님을 보고 낯을 가린 사람이 없다는 뜻이죠.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낯을 가리므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신약의 새 시대에는 낮은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통해 누구도 부끄럽지 않게 만드셨고 누구도 낯가리지 않도록 만들어 주시며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사람의 인권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죠.




하나님은 처절하고도 치밀한 계획으로 사람 중에서 가장 낮은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낯을 두려워하여 숨은 자들에게 변명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셨다고 확신합니다. 사람의 낯을 피해 도망갈 수 있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을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보는 낯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하나님에게 낯가림 없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잠언 24:23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신명기 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시편 104:29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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