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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준 Dec 18. 2018

[review]쓰리 빌보드

부조리와 분노에서 시작하여, 속죄와 용서로 끝나다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1 딕슨의 롱테이크 폭행씬

"여기 cracker(백인비하)들은 그렇게나 할 일이 없나"

새로운 흑인 서장의 저 한마디는 현실의 미국사회가 가지는 부조리와 갈등을 쉽게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는 '이은선 평론가'의 말처럼 "부조리와 성급한 판단"으로 넘쳐난다. 서장의 죽음 직후 아이처럼 울던, 딕슨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선글라스를 쓰고는 비장한 태도로 광고회사를 향한다. 누구보다 구차한 남자(딕슨)가 자신보다 약한 인간에게 보여주는 일방적인 폭력(또는 분풀이)은 영화가 보여주는 부조리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2 불타오르는 경찰서와 서장의 편지

"난 너가 좋은사람이란걸 알아, 딕슨. 그런데 네 속 안에는 화가 너무 많아.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아무 도움이 안돼. 네 꿈인 형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건 사랑을 품는거야."
 

딕슨은 서장의 편지를 읽으며 깨닫는다. 우리가 이런 악순환을 끝내기위해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닌 인간존재에 대한 애정과 이해라는 것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깨달았을 때, 그의 주변을 화염이 에워싼다.




#3 레드 웰비의 오렌지 주스

"눈물 흘리지마 상처에 덧나"


분노에 분노로 대응할 수록 상황은 악화된다. 딕슨은 밀드레드를 모욕하고 그녀의 친구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그녀(밀드레드)는 광고판을 세우고, 화염병을 던진다. 그런 분노와 좌절은 쌓이고 쌓여 결국 산 채로 딕슨을 불태운다. 딕슨이 병원에서 그가 폭행한 웰비를 만나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웰비로부터 오렌지주스(용서)를 건네받는다. 마치 서로 다른 인간과 인간이 함께할 때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듯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용서다"


딸이 강간당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고, 딸을 잃은 엄마는 오열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행동할 뿐이다. 영화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서사의 이미지에서 가뿐히 벗어난다.

분노와 모순은 거듭되고, 인물들은 공감과 냉소를 오고간다. 밀드레드, 윌러비, 딕슨, 웰비 등 극중 인물들은 유머를 잔뜩 구사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쉽게 비웃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그 이면의 인간 존재의 품격을 엿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분명한 선악은 없고, 우리는 극중 어떤 인물도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악의는 없음에도 서로를 쉽게 용서하질 못한다. 그렇기에 인간군상은 과도하게 복잡하고, 분명하게 고귀하다.


그렇게 갈등하던 딕슨과 밀드레드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바라보고 "Not really" 라는 말과 함께 길을 향한다. 현실에서 이런 구차하며 고귀한 인간존재들이 갈등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를 찍어누르는 폭력이 아닌, 속죄(redemption)와 용서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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