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진 May 26. 2016

바람이 꾸벅꾸벅 졸면서 달린다.

호남 고속도로, 2015.9.30

바람이 가을을 업고 까만 밤을 밟고 달린다.

진한 가로등 불빛에 눈이 부셔

뒤뚱거리면

뒤에 업힌 가을이 똑바로

못 걷는다며 구박을 한다.

달님이 낮잠을 자다가

염소 기침 소리에 퍼뜩 잠이 깬다.

사흘간 연휴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왼쪽 뺨이 약간 눌러져

하현으로 가고 있다.

흑염소 한 마리 보약으로

달여 먹여야 할까 보다

바람이 꾸벅꾸벅 졸면서 달린다.

가을이 귀를 잡고 당겨보지만

검정 어둠이 무겁게 내려와

연한 눈까풀을 아래로 당긴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보인다.

바람이 예뻐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들켜버렸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로망은 똑같은가 보다.

바람이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버티니

어쩔 수 없이

길게 뻗은 고속버스 지붕 위에

내려서 탄다.

무임승차를 했는데

고속버스 기사님은

전혀 눈치를 못 체고

부지런히 달리기만 한다.

빠알간 후미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체라는 단어가

아나운서의 입을 빠져나올 때

고속버스 지붕은 둘만의

세상이 된다.

가을이 짊어지고 온 보따리를

풀어낸다.

성묫길에 마음으로 꺾어 논

햇볕에 수줍어하는 달개비 꽃과

가냘픈 두 팔로 녹슨 철 파이프를 잡고 있는

파란색의 나팔꽃

분홍빛 갈망을 햇살에 담아

화사하게 녹여낸

이구아나를 닮은 이름 모를 꽃이

쏟아져 나온다.

바람이 곤말 속에 꼭꼭 숨겨온

비밀을 털어낸다.

연휴 동안 시달린 친구들의

내장을 달래주기 위해

된장국에 넣을 풋 호박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 아낙들의

원기를 다독여줄 빨간 석류

허기진 달님을 보양하기 위해

서리해온 흑염소 한 마리마저

풀어져 나온다.

올해 추석은 풍요로웠나 보다

이 풍요를 내일부터는

다시 열심히로 바꿔야겠다.

티격태격 다투던 바람과 가을이

달리는 고속버스 지붕에서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무척 피곤했나 보다

아직도 고속버스 기사님은

무임승차를 모르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서울로

서울로~~

밤을 달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장미꽃은 좌에서 우로 감아 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