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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Oct 05. 2016

태풍이 아양을 떤다

바람이 납작하게 눕는다

친구야!

바람이 분다

거추장스럽게 막아대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거센 압력을 부수려는 듯

태풍을 입고

억세게 불어댄다

친구야~!

바람이 분다

태양이 여름내 힘겹게 데워놓은

뜨거운 대지를 식히려는 듯

헝클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을 털어내니

속이 상한 여름 부스러기가

투덜대며

땅속으로 드러눕는다

친구야~~!

바람이 눕는다

지난여름 태양이

모질게 훑어놓은 들판을

 성글게 김매듯이

밟아대더니

찰랑이는 황금이삭에

반했는지

몸을 비벼대며 아양을 떤다

이글대던 뙤약볕에

앙상하게 남은 낮 알을

머리에 두르고

가을을 기다리던 누런 벼가

바람에 깔려서

납작하게 눕는다

몸서리치는 태양에

까맣게 태워가던 농부의 가슴이

놀장하게 익어가는

황금들녘을 보며

풀어지나 싶더니

가을 태풍이 올라타고 눌러대니

바람 밑에 깔리어

논으로 넘어지니

벼 한 알이 눈물을 찍어낸다

친구야~~~!

바람이 운다

여름의 잔해에 걸려 넘어지던

태풍이 허우적거리다

낚아챈 하늘이

가을의 무게에 찢어지면서

여름내 모아뒀던

비를 기다리던 간절한 소망이

쏟아져 나와

서러운 농부의 가슴을 타고

서럽게 울어댄다

친구야~~!

고향에 전화 한번 해볼래~?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누워서

바람이 울어서

부모님이 혹시 속상할 수 있잖니,

홀로 계신 노모가

쓰러진 벼를 세우기 위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안간힘을 쏟고 있진 않겠지~?

흔적을 지워내던 고향이

소식 없는 무관심에

서러워할 수도 있잖니~!

친구야~!

바람이 강해진다

밖에 놔둔 대야가

딸그락 퉁탕 야단이다

괜히 심술 난 바람이

막아선 대지를 뒤엎질 못하고

만만한 양판만 닦달하며

무뎌진 꼬리를 흔들고 있다

조만간 심술을 그치려나보다

친구야!

바람이 지나간다

이 녀석이 아마 네게도 가겠지~!

잘 다독여서 달래줘라

뒤끝이 강해서

차가운 동생을 데려올 모양이다

이젠

완연한 가을을 들여 세우려고

쇼를 부린가 보다

친구야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건강하길 빌께

파이팅해야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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