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가의 프랑스 건축 관찰일지
프랑스 건축 설계사무소 직장 생활의 첫 한 달이 지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적응하느라 바빠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고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일주일 정도 적응기가 없진 않았지만, 시작과 동시에 팀에 배정받아 늘 하던 것들과 비슷한 류의 작업을 배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일하게 된 환경은 이전의 제 경험과는 크게 다르지만, 하는 일은 결국엔 다 같은 건축이고 제가 했던 것들의 범주 안에 속해 있어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짧지만 강렬하게 느낀 한 달의 프랑스 건축 설계사무소의 인상을 제 생각을 더해 정리해보려 합니다.
제가 입사한 회사의 이름은 Ameller Dubois라는 곳입니다. 현재 80여 명의 직원들이 있고, 그중 60여 명이 건축과 실내 건축 파트, 그리고 낭트라는 지역에는 작은 지점까지 있는 꽤나 규모 있는 곳입니다. 사실 저는 흔히들 아틀리에라고 부르는 류의 사무실을 선호하고 많이 지원했습니다. 아틀리에라는 것의 기준이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니나, 대개 근무자 수를 통해 가늠하곤 합니다. 쉽게 말하면 작은 사무실, 그리고 작다 보니 장인정신이 있는 사무실 정도로 이해하면 쉽겠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몸담았던 아르키움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겠습니다. 건축가 김인철 교수님을 필두로 10명 내외의 적은 수의 직원들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되는 곳은 아틀리에로 인식되진 않고 중, 대형 회사로 구분하고 장인 정신보다는 시스템에 가까운 곳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인식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 기호를 가지고 있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는 취지와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의 경험이 추후 제 미래의 계획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지원 당시 규모보다는 작품의 '풍'만을 보고 결정하였고, 결국 지금의 회사에 채용된 것입니다.
제가 굳이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것이 깨어졌고,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사무실은 장인이고 큰 사무실은 시스템이다라는 공식은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적용되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입사와 동시에 공모전 담당팀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이 결정은 제가 채용 면접 당시에 요구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는 당장의 실시 업무보다는 초기의 안이 잡히고 큰 틀을 잡는 업무와 기본적인 프랑스의 법규를 함께 볼 수 있는, 프랑스의 건축문화 전반을 빠르게 볼 수 있는 것은 공모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배정된 팀에서 저는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었고, 시작과 동시에 수많은 회의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내 회의의 경우, Philippe Ameller라는 건축가이자 회사의 창업자와 함께 진행되는데, 모든 건축적인 결정과 내용은 이 순간에 나눠지고 이뤄집니다. 회사의 이름 역시 이 분의 성인 Ameller에서 따온 것이고, Jacques Dubois라는 공동 창업자의 성 또한 포함하여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지나치게 시스템적이지 않을까? 하는 제 우려 아닌 우려는 이 건축가와의 몇 번의 회의와 대화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켜봐 오고 추구해 오던 그 '건축적'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무언가는 이곳 역시 똑같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규모는 그저 그것을 행하는 인원이 많고 팀이 많아 생산량이 많아질 뿐, 질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였습니다. 물론, 시스템적인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앞서 말한 건축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서포트로서 체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상은 이상대로 유지하고 현실을 위한 체계는 그에 맞춰 정립되어 있는 모양새가 저로 하여금 어떻게 건축이 실생활, 실존하는 사회와 호응하고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생각하게 만듭니다. 한국에서 건축을 해오며 느끼던 현실과 괴리된 어떤 공허함에 대한 해결책, 혹은 그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은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프랑스 건축 설계 회사 중, 회사 이름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있다면 그것은 규모에 상관없이 그만의 건축관이 확고하고 배울 점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로는 장누벨을 들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장 누벨의 회사며은 Atelier Jean Nouvel인 걸 보면, 제가 가지고였던 선입견에 정 반대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선입견은 그저 선입견일 뿐 그것이 깨지는 순간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가 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려했던 것들은 다행히 불식되었고, 이제 제가 늘 잘해오던, 관찰의 과정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프랑스의 설계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 안에서 건축가들은 어떤 역할과 일을 하는지, 더 나아가 프랑스의 건축은 사회에서 어떤 입지이고 어떤 식으로 거기에 일조하는 지를 보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기록하여 제 것으로 만들면, 언젠가는 제가 계획하려는 미래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관찰일지는 그 미래에 닿을 때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