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일상화? 일상과 닿은 건축에 대하여...
새 직장에서의 한 달 이야기를 담은 뒤, 벌써 8개월가량이 지났습니다. 당초엔 6개월 정도 지났을 즈음에 소외를 적는 글을 남기려 했었는데, 생각보다 정신없는 나날들이 지나며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의 이야기를 잠깐 요약하면, 우선 직장에서의 적응기는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젠 본격적으로 제 역할을 찾아 주어지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시기에 들어섰습니다. 즉, 회사에서도 제 쓰임을 찾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덕분에, 초기 계약이었던 6개월을 잘 마무리하고 1년의 추가 연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계약직 신분으로는 한 직장에서 18개월을 소요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정규직으로의 전환 혹은 퇴직금과 함께 떠나는 두 가지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아직은 정규직이 아니기에 불완전한 신분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제 입지와 회사의 분위기, 특히 재정적 분위기가 나쁘지 않기에 잘 이어나갈 수 있을 듯한 예상과 함께 좋은 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남은 계약 기간 내에는 프랑스 건축사 과정인 HMONP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프랑스 건축사 취득 과정은 한국과는 달리, 실무와 동시에 진행되는 교육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등록하려면, 건축사 취득자, 회사, 학교 튜터 세 주체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마냥 순탄할 수만은 없는 것이, 간혹 사측에서 직원을 위해 꽤나 많은 배려를 해줘야 하는 부담 때문에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그와 같은 문제없이 잘 논의되어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학교의 튜터를 구하는 일도 일을 함께하는 팀장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일대기를 자랑하듯 열거한 이유는 프랑스에서 실무를 시작하며 제가 점차 새로운 건축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새 시장은 당연스럽게도 프랑스의 것을 의미하겠습니다만, 더 기회가 된다면 유럽으로 확장될 수도 있는 무엇인가입니다. 굳이 새롭다에 무게를 둔 이유는 제 개인의 측면도 있지만, 정말 제가 있었던 한국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같은 건축을 하고 있지만,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이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가 생각보다 매우 큽니다.
이미 이곳으로 와, 학생이 되어 배우면서도 조금씩 느끼는 부분이었지만, 이곳의 건축은 우리의 일상과 닿아 있습니다. 어떤 건축이 우리 삶과 떨어져 있는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삶은 '일상의 삶'입니다.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이지만 설명을 이어가면, 제가 알고 있고 겪었던 한국의 건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건축성' 혹은 '공간성' 등의 학교에서 배울 법한 용어로 설명 가능한 건축가에 의한 "작품성 있는 건축"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면에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 건물'로 불리는, 건축사에 의해 지어진 건축이 존재합니다. 이 구분된 건축으로 인한 한국에는 "양극화된 시장"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중 전자에 해당되는 분야에 몸담고 있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으로 건축일을 해왔고, 반대편에 있는 그것을 비판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치를 둔 그 건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는 정말 작은 부분, 건축 시장의 극히 일부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실무를 할 때에 진행한 프로젝트들도 되짚어 보면, 우리의 삶이 아닌 어떤 특정한 이들의 삶을 위한 소유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공한 한 사업가를 위한 임대용 건물 혹은 주택, 그리고 한 중견기업의 사옥 등이 있겠습니다. 물론 미리 이야기한 것처럼 그 안에 담긴 건축성과 공간성은 항상 탐구되었고, 연구되었기에 훌륭하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의 영향을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반면 프랑스에서의 건축 시장 구조는 한국과 다릅니다. 제가 이곳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또한 학생 때부터 조금씩 느꼈는데, 실제로 일로서 건축을 대하자 더욱 명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찾은 새 직장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공모전입니다. 공모전이라 하면 한국에선 극히 희박한 확률로 진행되는 가끔 이뤄지는 이벤트성의 것과 정말 치열한 경쟁률로 다뤄지는 공공 공모전 등으로 나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공모전은 그와 같은 나뉨 없이 공공성에 기반한 하나의 거대한 시장입니다. 그 안에서 경쟁입찰, 턴키, 컨소시엄 등 또 다양한 방식으로 나뉘어 진행될 수는 있지만, 그 기반은 하나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한국은 불균형하게 양극화된 시장이고, 프랑스는 공공성을 중심으로한 균형잡힌 시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지금의 설계사무소에서 다양한 공모전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학교, 노인주거시설, 병원 등 주로 공공시설입니다. 참여하진 않았지만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는 공공주택 프로젝트도 다수 진행 중입니다. 즉 우리 사회를 이루는 주거를 포함한 각종 기반시설이 위에서 기술한 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공모전을 진행하며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이 다뤄질 때에도,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건축적 가치를 기반에 두고 진행됩니다. 다시 말하면, 건축성, 공간성 등 기본의 개념을 잃지 않은 채 말입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공모전 주최지의 지역성이 고려되어 더 적절하고 나은 건축을 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이곳에선 건축사와 건축가의 구분 없이 건축가라는 단일한 개념만 존재합니다. 즉 건축적으로 나은 건축과 그렇지 않은 건축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물론 건축가의 역량이나 프로젝트의 주체들의 상황에 따라 그 수준의 편차가 발생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다뤄지는 틀은 모두 같기에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새로운 시장이라 여기고 희망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이것을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에서가 아닌 이곳에서라면 내가 생각한 건축을 좀 더 오래 완전하게 할 수 있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한국에서 건축일을 하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반면,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던 불편감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안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이로워야 하고, 그것이 건축이 가진 사명 중의 큰 하나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하나의 건축적 작품을 만들고 있는 동안 우리의 도시, 우리의 공간은 그렇지 못한 수많은 단순 건물들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파트 단지입니다. 하나의 건축작품이 지어질 동안 수천 세대를 수용하는 아파트 단지가 수없이 지어집니다. 그 시장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와 그들로 나눠진 현실이 우선 안타깝지만, 그 많은 건축 기회가 결국 하나의 답으로만 귀결된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더 많은 건축물들이 가능한 같은 시장에서 다뤄지고, 같은 수준의 건축인들로 의해 다뤄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이 일상이 되는 문화가 올 것이다.'라는 글로 앞선 지저분한 글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글의 제목처럼 이제는 제가 직접 관찰한 부분이 있기에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글로 옮긴 것이 오늘의 결과입니다. 아직 미흡하지만, 첫 단초를 찾았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기초로 해 조금씩 이야기를 구성해 볼 생각입니다. 완성된 구성을 만들어, 어딘가에 명쾌하게 소개할 수준이 된다면 그를 통해 제 건축과 더 나아가 한국 건축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