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제일 가깝고도 먼 타인
그동안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나만의 영원한 울타리라고 생각했던 공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생겨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다.
서른, 어른이 되어 이미 세상 속에서 나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시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들 말했다. 이곳에 글을 쓰기 위해 키는 순간에도 이런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른둘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서른 퇴사합니다.
문구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와, 저분은 벌써 결혼과 이혼까지 생각해야 되는 삶이구나. 저분은 벌써 커리어가 저정도구나. 내가 나만의 일도 없이 이런거만 생각 하고 있는 건 어쩌면 많이 이상한 일이구나.
새로운 삶, 내가 '주'가 되는 일상.
나에겐 없던 세상이었다. 나는 아직도 부모님의 귀속물처럼 집은 불리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나 환경이나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건 내가 변변한 일도 시작하지 않은 마치 사회 초년생 같은 상태였기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집안 일 마저 엄마가 돌봐주시니 완벽한 독립이 아니었다.
장애라는 걸 내세워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어려움 없이, 불편함 없이 그냥 사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내가 당연하게 생각한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에 사건이 일어났다.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고 한층 예민해졌던 나, 중년 우울증을 겪는 아빠, 이리저리 눈치 보며 참고 지내던 엄마의 일탈.
그토록 믿었던 가족이라는 둘레에 균열이 이토록 쉽게 생길 수 있나 할 정도로 순식간에 나와 부모님, 부모님과 부모님 사이가 뒤틀려지기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나의 가족 형태가 무너졌다. 그동안 참고 쌓아놓았던 감정들이 폭발하여 누구보다 가장 서로를 잘 아는 상대에게 가장 상처되는 말만 골라 할퀴었다. 평소 언니와 동생은 모두 타지에서 생활하며 시골의 일은 그다지도 관여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평소에 연락을 해도 으레 타지 생활하는 아이들처럼 할 말 있을 때 연락하고, 평소에는 관심 없이 자신들 일에 바쁜 그런 일상. 이럴 때는 그런 지극히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자신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두 사람이 참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아빠도 언니나 동생한테 서운할 때면 우리 밖에 없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나에게 있어 부모님은 세상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친구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엄마는 폭탄 발언을 했다.
"이제 엄마를 좀 버려"
자유를 원하던 엄마의 일탈. 걱정돼서 연락하는 것이 간섭 같다고 한다. 대화는 마치 중학생을 키우는 부모님과 딸의 모습이 상반된 위치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그 순간 헛웃음이 터졌다. 나의 세상에게 부정당한 기분. 나는 갑작스럽게도 세상도 잃고 친구도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날로부터 엄마와 표면상으로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온전히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던 내면속에 거리가 생겨났다.
비록 가족일지라도 삶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가까울수록 더 상처주기 쉽고, 알려고 할수록 더 멀어진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연인들의 이별과는 다른 내면의 이별이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오히려 멀리 있었더라면 부모님과 내가 부딪히는 일 대신 좋은 날 잠깐 만나서 좋은 시간만 보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단순히 몸이 멀어지는 걸 떠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의 거리도 조금 멀어졌다면 내 세상은 온전했을 거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여전히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서로에게서 가장 먼 타인이 되도록 노력한다. 서로가 상처주지 않길 바라며 상처받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나는 혼자가 되어 찾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