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함께하기
혼자가 된다는 걸 실감나게 해준 말이 있다.
"이제 너도 병원은 혼자 가야지"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릴적부터 늘상 부모님과 함께 다닌 병원을 독립후에도 당연히 같이 다닐거라 생각했던 나에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살면서 줄곧 다닌 병원은 동네 병원도 아닌 복잡하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5대 대형 병원이자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병원이라 지방에 살고 있는 나에겐 혼자 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었다. 근래에는 집앞도 혼자 못 나가는 나에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요구를 내 생활을 모르는 사람도 아닌 언니에게 들었던지라 더욱 난감했었다.
그날 이후 꽤 고민을 했었다.
과연 어떤 식으로 혼자 병원을 다니고,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야 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었다. 많이 움직이면 여지없이 아파오는 몸과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는 뼈는 실상 바깥활동을 독립적으로 하기엔 불가능한 요소들이었다. 그럼에도 고민을 해 본 건 달라진 가족의 환경에선 내가 기댈 울타리가 없어진 상황이라 나만의 생존 방법을 만들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살아가기 위해 가장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는 돈벌이였다. 일생을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제일 막막한 부분이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당연한 일상에 대한 접근조차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취업은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라고 했다.
막상 경험해 보니 취업은 누구에게나 열린 문은 아니었다. 취업 사이트에 재택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보면 무수히 많은 일들이 줄비해있다. 그 중 이 일은 할 수 있겠다, 싶었던 일을 고르면 면접 후 일정 기간 출퇴근이 필요한 교육 후 재택이라고 했다. 아, 이런 것도 재택이긴 하지. 마우스를 돌려 다른 일을 또 찾아 보았다. 집에서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막상 세상 밖에서는 일할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인증 받지 못할 집구석 능력만 가득한 흔히 말하는 야매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돈 벌이에 문 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럴 때면 드는 생각은 아, 몸이 멀쩡했으면 밖에서 편의점 알바 같은거라도 할 텐데. 라는 부질 없는 생각이었다. 무언가 자신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멋있게 보였다. 녹록치 않은 일자리 상황에 좌절감을 맛 보는 나에게 동생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테니 하고 싶은 걸 찾으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 하는 일은 무엇일까?
10대에 끝내야 하는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는 나였다. 20대가 지나고, 30대가 오면 자신에게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는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 간다고 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 곧 나의 삶을 결정하는 막중한 임무가 본인에게 달리는 셈이었다. 이제는 회피할 수 없는 나이가 왔고, 모든 스스로 결정해야 되는 현실은 어찌보면 잔인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엄마와 아빠는 가정을 이루고 우리를 키워냈던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무언갈 찾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나에게 채직질을 하는 가족과 당근을 주는 가족, 보살펴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더 없이 위안이 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혼자가 된다고 최근에 늘상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자가 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궁극적인 1차 목표 돈벌이는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되었지만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긴 했다.
그건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한창 대학교를 알아봐야 하는 시기에 문창과를 생각할 만큼 좋아했지만 딱히 재주가 없단 이유로 좌절된 일 중 하나였다. 그 무렵, 그 시절에는 인소(인터넷 소설)문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많은 여고생들도 작가의 반열에 오른 시기였기에 늘상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좋아한다는 글을 펼쳐내지 못한 나는 글에 재주가 없다는 결론이 났었다. 물론 가족들에겐 비밀이지만 그 무렵 나 또한 글을 연재하긴 했다. 다만 특별한 출판 제의를 받지 못한 채 완결 낸 글들만이 흑역사처럼 남아 있었다.
여전히 글쓰기엔 재주가 없지만 아직도 내가 이런 글을 펼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글쓰기가 맞는만큼 이제는 나에게 글이란 애착이자 애증같은 존재, 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가 되어 있다.
돈 벌이는 안되지만 그래도 난 글쓰는 내가 좋아.
이렇게 나는 오늘도 '언젠가는, 누군가는'이라는 단어로 언젠가 누군가가 보고 싶어하는 글, 기다려지는 글, 찾게 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버텨본다. 돈도 못버는데 좋아하는 것까지 못하는 건 진짜 살기 싫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