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31. 최고의 왕(太上)은 누구인가?

『도덕경』 17장 “태상(太上) 하지유지(下知有之)

by 구범 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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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군주가 다스리어 백성들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뜻하는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상징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중국 요(堯)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격양가(擊壤歌)”이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막대기로 땅바닥(壤흙 양)을 치며(擊칠 격)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日出而作일출이작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日入而息일입이식 해가 지면 들어와 쉬고

鑿井而飮착정이음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耕田而食경전이식 밭을 갈아 밥 해먹으니

帝力于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 임금의 덕이 나와 무슨 상관있으랴

태평성대의 상징처럼 쓰이는 말이 요임금과 순임금의 ‘요순시대(堯舜時代)’이다. 그런 요임금답게 길거리에서 한 노인의 격양가를 통해 백성들이 정말 배부르게 근심걱정 없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모습을 목도하고 흐뭇하게 궁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도덕경』 17장에는 “태상(太上) 하지유지(下知有之)” 즉, '최고의 왕은 아랫사람(백성)들이 알기를 (왕이)

있구나!’라고만 느껴지는 정도의 그런 왕이라고 했다. 격양가의 노인처럼 자신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먹고

살아가는데 왕의 존재여부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기차(其次) 친이예지(親而譽之)” 그 다음은 친하고

명예로운 왕이고, “기차(其次) 외지(畏之)” 그 다음은 두려워하는 왕이고, “기차(其次) 모지(侮之)” 그 다음은 모멸하는 왕이라고 했다. 우리는 친이예지 즉 덕치(德治)를 구가하는 왕을 최고로 여기지만, 『도덕경』에서는 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의 왕을 최고의 왕으로 여긴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황제들은 무위(無爲)의 통치를 꿈 꿨던 것일까? 코끼리 무리에서 대장코끼리는 유명무실한 듯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존재만으로도 무리의 질서가 유지된다.


지나온 많은 대통령들을 돌아보니, 늘 장관을 앞세우며 정말 주요 현안에 대해서만 직접 발표하던 대통령도 있었고, 그 반대의 만기친람(萬機親覽)하던 대통령도 떠오른다. 어떤 대통령이 더 대통령다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까? 오늘날 “하지유지”의 대통령을 보는 것은 요원할 듯하고, “하지유지”의 CEO는 어디 없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곳은 조용하다”고 말했다. 오래 전에 포스코 광양제철을 견학한 적이 있었는데,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제일의 철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인데 돌아다니는 사람 한 명도 볼 수 없었고 너무나 조용했다. 그 순간, 피터 드러커의 말이 떠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 하지유지(下知有之), 하지유지(下知有之)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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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자 산책』은『도덕경』 81장 속 보물 같은 구절들을 오늘의 언어와 감성으로 풀어낸 고전 산책 에세이입니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쉼표가 되고,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는 물 흐르듯 나아가는 길이 되어줄 것입니다. 특히, 전문 CEO에게는 "무위경영(無爲經營)"의 깊은 통찰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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