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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Sep 15. 2023

갱년기일기

감정격동

나는 첫째 딸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꾹꾹 눌러 참아야 하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 강요받고 배웠다. 

가슴속에 불덩이 하나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작은 불덩이가 점 점 더 커져만 갔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뜨거운 용암이 내 가슴 안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상선 기능 항진약을 몇 년이나 먹었다.

머리에 동전 크기의 구멍이 생기면 피부과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갑갑함에 심리 상담사를 찾았다.

상담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톤으로 말하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이 좋아 자기 절제이지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








 혼자 제주로 건너온 지 삼 년.

지나온 삶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그런 와중에 변화하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감정이 날뛰는 현상이 자기 치유의 한 모습인지 갱년기 증상인지 헷갈린다.


대화 중에 흥분을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내 마음을 잘 제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날카로운 말들이 튀어나온다.

감정이 통제하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흥분하고, 화를 내고,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서 내가 예술가라서 그런지 감정적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며칠 지나고 감정에 흔들리는 내 모습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눌렀던 감정들이 짐승처럼 날뛰어도 억지로 꾹꾹 눌러 둘 때보단 나았다.


감정들이 조금씩 숨을 쉬고 있는 걸 느낀다.

목구멍까지 차고 오르던 갑갑증이 내려가고 있다.


감정을 꽁꽁 싸매어야 한다는 생각을 놓아버리니

감정이 날뛰고 있다.

그럴지라도 나는 그대로 둔다.


놓아둠으로 나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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