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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Sep 16. 2023

갱년기일기

한풀이

"엄마, 그건 학대였어."

"학대?"

"엄마가 내게 했던 건 학대였어."

"그래.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엄마가 힘들고 괴롭다고 아이에게 했던 게 정당화되진 않아.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과 행동이 여전히 칼이 되어 나를 찔러. 살아오면서 계속 그랬어."

"그래.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랬는데 너한테만 내가 잘못했지. 너를 누르려고만 했어."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그렇게 기를 꺾고 누르려했어?"

"엄마가 못 배워서 미안하다. 나도 몰랐어."

"엄마 못 배웠다고 매 순간 자식에게 악담을 하고 상처내진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왜 그렇게 했던 거야?"

"미안하다. 우리 이제 다 잊고 살자. 지나온 것들 생각하고 떠올리고 하면 힘들잖아."

"묻어두고 그냥 없던 일로 하면 다 사라져? 나는 엄마의 입장이나 환경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래 그때 너 낳고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 데리고 와야 했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돈도 없는데 동생들 데리고 오니까 네 아빠는 난리였고..."

"알아. 알긴 아는데 그렇다고 그때 내가 태어난 것이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지.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너한테만 유독 그랬어. 너한테만 항상 미안해."

"그러면서 왜 자꾸 내게 참으라고만 하는 거야? 여전히 동생과 문제 생기면 걔 성질 더럽다고 나보고 참느라잖아. 엄마 왜 내가 계속 참아야만 해?"

"그래. 미안해."

"엄마말대로 이제까지 살면서 참았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참기만 했어. 남편 놈 주식으로 재산 날려도 참고, 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침고, 다른 여자 만나고 다녀도 참고... 근데 참으면 뭐 해?"

"......"

"참으니 화병밖에 안 남았어. 근데도 참고 오손도손 남편 놈 용서해 주고 살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해?"

"그래도 사이좋게 살면 좋잖아. "

"그게 어디 나 하나만으로 될 일이냐고."

"그렇지.."

"화병에 속이 터져나가는데도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참고 또 참고.. 엄마가 참으라니까.. 내가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이런 말을 엄마한테 한 적 있어?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엄마가 아파할까 봐."

"그래. 그래 엄마한테 다 얘기해 엄마가 다 들어줄게. 어디 나가서 얘기하면 네 얼굴에 침 뱉기잖아."

"아니. 엄마,  내가 말해주는 거야. 엄마는 듣고 싶어도 내가 말 안 해주면 엄마는 내 생각을 들을 수 없어. 이렇게라도 이야기하는 건 엄마에게 내가 아직도 애정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 그렇지. 에고."

"내가 어떤 삶을 살든 이혼을 하든 어떻게 하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엄마가 뭐라 할 순 없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거야."

"그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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