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수용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의 부담을 깨고 한 글자 한 글자 생각과 감정을 적어 내려간다. 발이 푹푹 빠져 걷기 힘든 하얀 눈밭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처럼 뒤뚱거리기도 하고 넘어질 듯하기도 하다.
이 막막함과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을 만난다.
슬픈 내 모습을 만나기도 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만나기도 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만나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치듯 울기도 한다. 자신을 만나는 일은 좋으면서도 두렵다.
아마도 자신을 직면하고 싶은 마음과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부딪힘일 것이다.
자신을 보여주는 일에 나는 미숙한 사람이었다. 얼굴에도 잘 나타나지 않게 가면을 잘 썼고,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맏이로 태어난 이유이기도 했고, 어릴 적부터 표현해서 수용받은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시골에 보내졌고,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땐 이미 나는 맏딸이었고, 투정을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기도 했고,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야만 하기도 했지만 내 부모도 수용이나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했던 사람들이라 자식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방법에 미숙했다.
자식이 귀하다는 생각보다는 부모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믿고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또 나는 엄마와 많이 닮은 듯 닮지 않은 아이였다. 어린 게 얼마나 고집이 센지 잘못했다는 말을 맞아 죽어도 하지 않았다고 나에 대해 엄마는 말했다. 어떤 일로 내가 맞아 죽을 만큼 잘못했고, 엄마에게 빌어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기억난다. 눈을 똑바로 뜨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고 야단치던 모습, 똑바로 바라본다며,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고 맞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맞아야 하는지 몰랐다.
얼마 전 엄마는 어릴 적 내가 너를 많이 잡았다고. 너는 고집이 센 아이여서 그랬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상하게 그런 말을 들었음도 내 마음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한 번의 미안하다는 말과 사과가 오랜 시간 동안의 서러움을 해소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살면서 삶을 뒤흔드는 일이 있을 때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 엄마에게 얘기해 봐야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너만 참으면 된다고 했다. 누군가의 다툼에서도 심지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저 너만 참으면 된다는 답을 주는 엄마에게 내가 찾아가서 위로를 받거나 힘을 얻을 순 없었다.
자신을 직면한다는 건 이런 일들이다. 서럽고 억울하고,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고 그때의 나를 안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때의 아픔과 서러움이 나를 덮칠 때 울음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거친 울음을 뱉어내고 나면 억울함과 슬픔이 가라앉는다. 다 흘려버리고 싶고, 제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살아왔던 생각의 습관과 마음의 습관이 쉬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럴지라도 나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을 하고 어째서 막막함을 느끼고 어째서 두려운지를 이해하게 된다.
글을 쓰며 나를 알아가고 아픈 나를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