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의 하루 10화

갑질

첫직장

by 글몽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A4 용지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180센치는 넘는 삼십대의 이사는 50대의 경리 과장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당신들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냐고? 이 씨팔. 싹 다 갈아치워야 돼.”
카랑카랑한 서울말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서울말은 부드러워 서울 남자들은 죄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며 상냥한 줄 알았다. 서울말로 쏟아내는 욕설은 서울말이든 경상도 말이든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씨를 만들어 냈다.

십수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짝 벗겨진 이사의 이마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갑질이라는 단어도 인식도 없었다. 당시 사장은 80대 노인이었고, 30대의 아들 재벌2세(재벌까진 아니었지만, 중소기업 2세?)가 회사 운영을 전적으로 맡기 시작했다.

서쪽 공단에서 남쪽 공단으로 증축해 이사를 한 직후였다. 회사공장과 사무실 책상 의자 등 모든 것이 새것으로 반짝였다. 일층에는 경리과, 총무과 직원들의 사무실이 있었고, 이층은 사장실, 이사실, 회의실, 그리고 사장실과 이사실 중간쯤 부속실이 있었다.

비서실이면 비서실이지 조립하는 기계도 아닌데 부속실이라 명패가 걸린 사무실에 나는 근무를 했다. 당연히 이사의 행태를 자주 목격했다.





이사사무실은 사장의 사무실보다 더 컸는데 사무실 옆에 욕실이 붙어 있었다. 이사는 회사에 출근하면 욕실에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집에서 씻고 나오지 않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욕실의 청소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총무과 과장과 청소 아줌마를 불렀다. 청소를 이따위로 하는 아줌마를 뽑으면 어떻게 하냐고.. 청소를 똑바로 하라고... 사람을 앞에 두고 한번 만 더 그러면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쉽게도 내뱉었다. 문밖에 있던 나에게도 그의 카랑한 서울말이 들렸다.

내가 퇴사할 때까지 아줌마는 이사실과 이사실에 붙은 욕실을 아주 정성껏 청소했다.




경리실 여직원이 결재를 하기 위해 쭈뼛쭈뼛 이사 앞에 섰다.

그는 여직원을 힐끗 보더니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야, 이 새끼야, 이거 뭐야? 이걸 일이라고 한거야?” 이사는 고개를 숙이며 서 있는 경리과 여직원에게 다가가 팔뚝과 등과 심지어 배와 가슴 중간 부분을 집게 손 끝으로 쿡 쿡 질렀다.




회사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사람의 갑질은 소속되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었다. 직원들의 얼굴에 불만과 공포감이 자주 보였다.

위에 있는 사람이 갑질을 하니 자신의 아래에 있는 직원들에게 특히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다니고 있는 여직원들에게 언어폭력과 성희롱과 갑질을 자행했다.






나는 몇 개월 후 첫 직장을 끝냈다.

keyword
이전 09화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