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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Jul 12. 2023

꿈속

빨간 비옷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저 그런 날이었다. 갑갑함에 운동화를 신고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돌담이 쌓인 길에 접어들었다. 돌담을 따라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바스락바스락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습기를 머금은 서늘함이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초록의 곰팡이들이 돌 위에 빼곡히 있었다. 바람이 불면 햇빛이 돌 위에 내려앉았다가 사라지곤 했다. 내 눈 끝에 닿은 것은 귤밭 사이 대문이었다. 열린 대문에 빨간 비옷이 걸려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빨간 비옷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서웠다. 빨간 비옷이 팔을 활짝 벌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기이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나뭇잎들이 비옷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나무 작은 나무들이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댔다. 댄스홀인 양 나무들이 춤추는 사이사이를 빨간 비옷은 날아다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풍경들을 믿을 수 없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눈을 비볐다. 빨간 형체가 서서히 다가왔다. 숨이 막혔다.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어둠이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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