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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베네치아!

2018 이탈리아: 부라노섬엔 꼭 맑은 날 가야 한다.

by 금선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아침을 먹고 우리 둘은 비가 그친 골목을 따라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갔다. 날은 개었지만 아직은 흐렸고 광장 곳곳에 물 구덩이가 많아서 신발이 다 젖었다. 장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도 보인다. 물이 적게 있는 길을 따라 사람들 뒤로 줄을 서서 드디어 광장에 도착했다.


산 마르코 성당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

비수기라 그런지 아니면 비가 와서 그런 건지 지난번에 왔을 때처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여유 있게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날씨는 흐렸지만 곤돌라가 유유히 떠있는 베네치아의 수로와 산 마르코 광장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비둘기가 별로 보이지 않아서 더 좋았다. 예전에는 비둘기가 많은지 사람들이 많은지 모를 정도였는데... 비가 와서 좋은 점도 있구나 싶다.


점심을 먹고 부라노섬으로 가기로 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부라노행 바포레토 선착장으로 가는 중간에 가성비가 좋은 맛집이 있다. Poppa Bar Venezia라는 곳인데 음료가 포함된 세트메뉴를 12~15유로에 먹을 수 있는 곳이다.

Puppa Bar Venezia 한글 메뉴
Puppa 버거와 먹물 파스타

인기가 많은 곳이라 자리가 없을까 조금 불안했는데 이른 시간이라 마침 2인 자리가 하나 남아있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여행자도 제법 보였다. 먹물 파스타와 수제 버거 그리고 음료는 맥주와 스프리츠를 주문했다. 베네치아의 식전주인 스프리츠(Spritz)는 처음 먹어보는데 살짝 새콤 달콤한 탄산이 있는 과실주 같은 맛이었다. 음 내 취향은 아닌 걸로... 다른 음식들은 다 맛있었고 비싸기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물가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에 이 정도의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두 팀 정도 대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유명한 맛집인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오후가 되니 날씨가 맑아지고 있어 기분도 더 좋아졌다. 부라노섬으로 가려면 베네치아 본섬 북쪽 F.te Nove "A" 선착장에서 12번 수상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야 한다. 전날 미리 구입한 24시간 교통권을 단말기에 찍고 부라노행 바포레토에 올랐다.

수상버스 바포레토

※베네치아의 교통권은 1회권 7.5유로, 1일권(24시간)은 20유로라 3번 이상 바포레토를 탈 예정이라면 1일권을 사는 게 유리하다.



부라노섬으로

푸른 파도가 뱃전에 부딪치며 하얗게 포말을 만들어내고 햇빛에 반짝이며 흩어진다. 멀리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알록달록한 색깔의 섬의 모습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부라노섬 가는길

아침의 흐렸던 날씨는 씻은 듯 사라지고 더없이 파아란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부라노섬은 흐릴 때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예쁘지 않다고 하니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랐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기대한 대로 너무 예쁜 색감의 마을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부라노섬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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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장소로 알려져 있는 부라노섬은 베네치아 북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레이스 공예가 주 수입원인데 우리에겐 빨강 노랑 주황 초록 등 선명한 색깔의 집들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어부들이 자신의 배를 다양한 색으로 칠하던 것이 시초라고 한다. 조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안갯속에서 자신의 집을 잘 찾을 수 있게 여러 가지 다른 색을 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귀여워서 한 컷

골목마다 색색의 집들이 희한하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촌스러울 것 같은 색조차도 나란히 칠해져 있으니 색다르고 개성적인 매력을 풍긴다. 입구 쪽에는 여행객들이 많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는 예쁜 집과 골목에 감탄하며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곳곳에 이어진 수로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을 보느라 지루할 틈도 없었다. 동화 속 그림처럼 알록달록 예쁜 모습에 우리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이 났다. 사진도 예쁘게 나오는 것 같아 수 백장도 넘게 사진을 찍었다. 정말 날씨가 다 했다!

역시 부라노섬에는 날씨가 맑은 날 와야 되나 보다.






산 조르조 마조레 (San Giorgio Maggiore)

부라노섬을 떠나 본섬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 남쪽에 있는 산 조르조 섬으로 향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에 올라 일몰과 전망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경우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에서 전망을 보는데 우리는 반대로 산 마조레 성당에서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의 전망을 보기로 했다.

아카데미아 다리위의 여행자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베네치아의 석양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리알토 다리나 아카데미아 다리로 간다. 수상버스를 타고 산 조르조 섬으로 가는 길에 본 아카데미아 다리 위에도 석양을 보려고 모인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바다는 점점 저물어가는 태양빛으로 붉어지고 황홀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일몰을 본 적이 없었다.

성당의 종탑은 6시까지 오픈한다고 했다. 벌써 5시가 넘은 시간 서둘러 입장권을 구입하고 전망을 보러 올라갔다. 늦지 않게 올라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더구나 전망대 위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어서 더욱 좋았다.

종탑 위에서 베네치아를 보니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도시를 보는 듯했다. 붉게 물들어가는 도시와 바다의 모습에 우리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내가 느끼는 이 감동에 겨워 혹시 딸도 같은 기분일까 돌아보니 딸은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라며 관리인이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보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베네치아의 야경

숙소로 돌아오는 수상버스 안에서 우리는 '진짜' 베네치아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비 때문에 흐렸던 어제와 달리 물에 비친 불빛과 운하, 그리고 리알토 다리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 밤의 베네치아는 또 이렇게 아름답구나!

리알토 다리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모습의 베네치아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가슴 뛰는 감동을 안고 다시 숙소로 갔다.





Il Santo Bevitore

이대로 잠들 수는 없었다.

사실 리알토 다리 근처 전망 좋은 곳에서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싶기도 했지만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좀 위험하다. 우리가 묵는 한인 민박 바로 앞에 이국적인 펍이 있어 거기서 둘이서 맥주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Il Santo Bevitore라는 이 펍은 숙소를 선택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작은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디에도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Il Santo Bevitore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우리의 민박집이다.

숙소 앞에 있는 야외 공터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반대편에는 펍의 불빛이 비치는 운하가 보였다.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맛있는 맥주가 있어 더없이 낭만적이다.


"엄마 뭐 마실래? 라거? 흑맥주?" "두 가지 다 주문해줘."

종업원을 부르는 게 아니라 야외에 자리 잡고 앉은 다음 가게 안으로 가서 원하는 맥주를 주문해서 바로 계산하고 가져오면 되었다. 1유로짜리 안주 몇 개를 저녁 삼아 시키고 여러 가지 맥주를 맛보았다. 바게트처럼 딱딱한 빵 위에 다양한 토핑이 얹어진 일종의 타파스 같은 음식인데 맥주와 함께 먹으니 상당히 맛이 좋았다. 맥주마다 다른 맛이라 이것저것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숙소 바로 앞이라 걱정도 없어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오늘 둘이서 갔었던 베네치아의 여러 곳들과 내일 가야 할 일정, 처음 둘이서만 여행하며 느꼈던 서로에 대한 이야기 등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딸이지만 친구처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여행이었다. 서로를 더 잘 알게 해 준 이탈리아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더 재미있고 안전하게 잘 마무리하자고 다짐해 본다.

밤이 깊어지고 운하를 비추는 물빛이 깊어질수록 베네치아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베네치아! 베네치아!

2년이 지나 다시금 옛 앨범을 들춰보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보고 있다. 기억해내면 할수록 더 좋은 추억만이 떠오른다.

오! 베네치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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