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의 아레나는 1세기경 로마 시대에 세워진 곳으로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검투사들의 경기가 이루어졌고 중세에는 기사들의 마상 경기 등이 여기서 치러졌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주로 연극 공연들이 열렸는데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오페라 '아이다'가 처음 공연되면서부터 매년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공연장이 되었다.
12세기에 지진으로 파손되는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파손된 외벽과 구멍 난 벽돌 등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레나의 모습이 화려했던 로마의 역사와 몰락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가 베로나에 갔던 때는 2018년 10월 초,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여행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통로와 계단을 지나 아레나 내부로 이어지는 입구로 들어섰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아레나 중앙에 있고 주위를 둘러싼 관람석도 보인다.
2000년이 넘는 역사의 흐름 아래 얼마나 많은 잔혹한 사건과 아픈 사연들이 이 곳에서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돌벽에 둘러싸여 외로이 긴 세월을 견뎌낸 아레나의 모습에 어쩐지 허무함이느껴졌다.
물론 여름에 이 곳에 와서 화려한 공연 장면과 관객으로 북적이는 아레나를 보았다면 그러한 감흥을 느끼지는못했을 거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
1913년 처음 아이다 공연이 이루어진 후 매년 6~9월이면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오페라 축제가 개최되었다. 축제 기간에는 베르디, 푸치니 등 여러 유명한 작곡가의 작품 5~7편이 50여 회 공연된다. 야외극장이지만 음향 효과가 뛰어나 웅장하고 훌륭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의 목소리와 수준 높은 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이 몰려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유럽에서 코로나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또 초반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도 이 곳 베로나가 속해있는 이탈리아의 북부 지역이다. '베로나가 아프다'라고 어떤 기사에서 보기도 했다. 올해 여름에는 오페라 축제도 개최되지 않았다.
지금은 전 세계 어디나 아프고 힘든 시기이다. 이 상황이 어제 끝날지, 어쩌면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진 속 아레나 외부의 파손된 거친 벽돌을 그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며 역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이 건축물은 어쩌면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찰나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아마 지금도 아레나는 고요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별이 빛나는 여름밤 야외극장에서 다시 울려 퍼질 위로와 희망의 음악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