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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Nov 20. 2020

가우디 없는 바르셀로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바르셀로나 도심 여행 1편

 

오늘 제대로 한 번 걸어 보자!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일찍 눈이 떠진다. 해뜨기 직전 6시 반이 넘어가고 있다. 딸이 일어나기 전 산책을 다녀오기로 하고 호텔을 나선다. 2월 중순의 바르셀로나는 따뜻했지만 새벽에는 춥지 않을까 싶어 한 겹 더 걸치고 나갔다. 스카프를 두르고 겉옷을 잔뜩 여미며 바삐 출근을 하는 현지인들 사이를 여유 있게 목적 없는 걸음을 내딛는다. 일상을 벗어나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이의 일상 속에 있다는 게 어딘지 어색하면서도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진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제법 밝아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걸으며 오늘의 일정을 짚어 보았다. 오늘 우리는 셀프 가우디 투어를 하고 람블라스 거리와 보케리아 시장 등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고딕지구 야경을 볼 예정이다. 다소 힘든 일정일 수 있지만 다음날 아침 그라나다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여행에서 3만 보 정도 걷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빡시게 한번 걸어 보겠구나 .


대부분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우디 투어나 고딕지구 야경 투어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우리도 그렇게 할까 하다가 그냥 뚜벅이 자유 여행으로 다니기로 했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같이 다니는 게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랬는데 안 하길 잘했다. 아침에 일어난 딸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제대로 한 번 걸어보려고 했더니... 차질이 생겼다.


바르셀로나 여행의 시작인 카탈루냐 광장




까사 밀라와 까사 바트요

카탈루냐 광장에서 가까운 그라시아 거리에 몇 블록을 사이에 두고 '사 밀라''까사 바트요'가 있다. 두 건물 모두 안토니 가우디가 건축한 집이고 다른 건축물들과 다른 가우디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양식을 볼 수 있다. 또 거리가 가까워 한번에 두 군데 다 둘러보기 쉽고 서로 다른 매력이 있어 비교하며 보아도 좋을 듯하다. 


까사 밀라
까사 밀라의 하이라이트인 옥상과 투구 모양의 굴뚝

까사 밀라 (Casa Mila)

산을 모티브로 한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라 페드레라 (La Pedrera, 채석장)  바르셀로나의 부호인 밀라 부부의 의뢰를 받아 안토니 가우디가 1905년에 짓기 시작해 5년 만에 완공한 주택이다. 몬세라트의 바위산을 보고 영감을 얻어 거친 돌로 마감을 해 자연미를 살렸다고 한다. 초기에는 채석장 같고 기괴하다며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히 옥상에 있는 투구 모양의 굴뚝은 영화 '스타워즈'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까사 밀라 카페 천장


우리는 내부 관람을 하지 않았지만 뭔가 좀 아쉬워 1층에 입점해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카페의 천장에서 '까사 밀라'의 건축 양식을 살짝 맛볼 수 있는데 파도의 물결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과연 멋진 천장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한 것도 없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제 '까사 바트요'를 향해 가보자. 


까사 바트요

까사 바트요 (Casa Batllo)

'까사 밀라'의 테마가 산이라면 '까사 바트요'는 바다를 모티브로 지어진 건물이다. 카탈루냐의 직물 업자인 바트요가 가우디에게 리모델링을 맡겨서 탄생하게 된 건물로 해골을 연상시키는 외부 테라스 장식 때문에 까사 델 오소(Casa del osos), 즉 '뼈다귀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외관은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의 전설을 테마로 삼고 있다. 벽을 덮은 푸른 세라믹은 용의 비늘을 표현했고 계단과 발코니는 용의 척추와 머리뼈를 형상화했다. 마치 판타지 세계를 보는 듯한 이 아름다운 건물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뼈다귀를 연상시키는 발코니 난간

우리는 두 건물 중 '까사 바트요'는 내부 관람을 하기로 했다. 여행 오기 전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했고 입장료는 1인 25유로이다. 한국어 가이드가 있어 건물 내부의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들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신 뒤 우리는 입장 시간에 맞춰 '까사 바트요'에 들어갔다.


바닷속을 연상시키는 타일의 색감
용의 등을 형상화한 옥상의 모습

입구에서 바우처를 보여주고 한국어 가이드와 헤드셋을 받아 가이드에서 들려주는 순서대로 이동하며 설명을 들으면 된다. 과연 가우디의 건축물답게 직선은 거의 없고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치형 천장과 타원형의 창틀 모양, 마치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연출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독창적인 내부의 모습에 감히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지중해를 테마로 해서 푸르고 개성적인 색채의 향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계획에 의해 배치된 것을 보며 가우디가 얼마나 치밀하게 건축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관람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할 정도로 즐거운 경험을 했다. 까사 밀라는 보지 못했지만 후기가 좋으니 여행 중 시간 여유가 있다면 두 군데 다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니투스의 꿀 대구는 꿀맛이!

- 한국인 맛집에 대한 솔직 후기

까사 바트요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바로 근처에 바르셀로나에서 꼭 가보아야 한다는 맛집이 있었다. '원나잇 푸드 트립'이란 TV 프로그램에서 권혁수가 먹고 극찬해서 한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된 비니투스이다. 낮 12시 오픈인데 가까운 거리라 바로 갔더니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반드시 먹어 봐야 한다는 꿀 대구와 맛조개,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스테이크 타파스와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비니투스의 대표 메뉴인 꿀 대구는 정말 꿀맛이었다. 맛있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꿀의 맛 났다.  대구살에 꿀을 뿌리고 치즈를 얹어 익혀내어 그 살은 입에서 살살 녹는 듯하다. 그런데 치즈를 한 입 먹는 순간 꿀의 단 맛이 느끼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도대체 이 맛있는 대구살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쉽게도 딸과 나는 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입맛은 우리의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그리고 대구 한 토막에 10.9유로(약 14,200원)는 너무 비싼 것 아닌가?


다른 음식들은 맛있었고 처음 맛본 샹그리아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샹그리아도 달아서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고 결국 양도 얼마 안 되는 음식을 다 먹지도 못했다. 적은 양의 음식을 간단하게 먹는다는 취지의 타파스 바에서 45.8 유로(약 6만 원)나 계산하고 일어서야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 비니투스는 가성비가 너무 안 좋은 식당이라는 게 딸과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딸 이제 일어나야지!

서둘러 딸을 깨웠다. 원래라면 점심 먹고 람블라스 거리와 보케리아 시장으로 갔어야 했지만 아침부터 안 좋아 보였던 딸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져서 일단 호텔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두 시간 넘게 자고 난 딸은 그나마 좀 기운을 차렸다.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 가우디 투어를 신청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딸도 힘들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민폐가 될 뻔했다. 오후 4시로 예약되어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 호텔을 나섰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카탈루냐 광장에서 지하철 L2를 타고 3개 역을 가면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물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볼 수 있다. 가우디가 31세가 되던 1883년부터 1926년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간 건축을 맡았던 이 성당은 아직도 미완성으로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 대전 때 건설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건축되고 있다.


출처  pixabay. com

성당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했는데 일반 입장권(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포함)은 26 유로이고, 만 29세까지는 수요일 오후 4시 타임에 50퍼센트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할인을 받는 것도 좋지만 오후 해가 낮아질 때 방문하면 빛이 많이 들어와 더 아름답다고 하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오디오 가이드가 잘 되어있어 구간마다 자세한 가이드를 들으며 관람을 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웬만한 곳에는 한국어로 된 가이드가 있어서 편하고 좋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보통의 성당과는 다른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자연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건축이라 그런지 나무처럼 뻗어 있는 기둥이 보였고 마치 숲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 같은 따스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딸도 홀린 듯 정신없이 가이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지금까지 가 보았던 성당 중에 이처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처음 봤다고 했다. 다채로운 색감의 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빛의 향연은 나를 꿈속 어딘가로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가우디의 건축 세계에 대해 그렇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바르셀로나에 가우디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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