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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Dec 06. 2020

알람브라 궁전을 걸어보다.

그라나다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


알람브라 (Alhambra)

그라나다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그건 바로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남긴  알람브라이다.

알람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13세기에 짓기 시작해 14세기에 완공되었고 유럽 땅에 남은 최고의 아랍 건축물로 꼽힌다. 1492년 이사벨 1세 여왕과 페르난도 2세 부부 왕에 의해 함락되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의 문화와 역사를 느껴볼 수 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2월 날씨가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싶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겉옷을 단단히 챙기고 호텔을 나섰다. 호텔 바로 옆에 알람브라 궁전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오르막이기도 하고 알람브라에서 여러 시간을 걸어 다닐 예정이라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대부분 알람브라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입구를 지나 알람브라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면 사이프러스 나무가 가지런히 손질된 왕의 길로 들어선다.

날씨는 지나칠 정도로 좋았고 이제 제 컨디션을 찾은 딸의 얼굴은 밝았다. 겨울이라 조금은 삭막한 풍경을 보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푸른 사이프러스 나무와 예쁘게 정돈된 정원이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왠지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알람브라를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전에 홈페이지에서 입장권을 예약해야 했다. 예약할 때 미리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같이 정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입장을 할 수 없다.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맞추기 위해 좀 일찍 도착을 했고 근처의 카를로스 5세 궁전에 먼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Palacio de Carlos V)

아랍식 건축물 사이에 뜬금없이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 세워져 있다. 1526년 그라나다로 신혼여행을 온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5세가 알람브라보다 멋진 궁전을 짓겠다며 이슬람 궁전 일부를 허물고 공사를 했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직사각형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원형의 중정을 여러 기둥들이 둘러싸고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출처 : pixabay. com )

알람브라 궁전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혹평을 받기도 한다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고전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둥글게 이루어진 중정 주위로 2층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고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이 건축되어 있다.


나스르 궁전 (Palacio Nazaries)

나스르 궁전 입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문화재 보호와 질서 유지를 위해 30분 간격으로 300명씩 입장을 시켰다.

드디어 줄을 서서 입장!

두근두근 기대감을 가득 안고 궁전으로 들어갔다.


코란 속의 낙원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나스르 궁전은  당시 술탄과 왕실 가족들이 머물던 곳이며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고 각료들이 정무를 보던 공간이다. 이슬람 건축의 교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매 구간마다 설명을 들어가며 관람을 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사실 그다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것보다 유래나 일화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감상을 해서 더욱 마음에 와 닿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아라야네스 정원

나스르 궁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코마레스 탑이 물에 비치는 아라야네스 정원이다. 알람브라를 소개하는 사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사진은 많이 보았으리라 싶다.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일곱 개의 아치를 가진 코마레스 잔잔한 수면 위대칭적으로 비쳐서 환상적인 장면연출한다. 파란 하늘과 물에 반사된 건축물의 신비한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사자의 정원
두 자매의 방 천장


여러 용도의 공간마다 상징과 섬세한 기교, 아랍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의 우아함 등 볼거리가 너무 많았다. 아치로 이루어진 회랑 사이로 오렌지 나무가 있는 정원을 보며 나는 마치 수백 년 전 역사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스르 궁전의 출구 파르탈 정원

나스르 궁전의 출구를 나서면 파르탈 정원을 만나게 된다. 딸은 이 곳이 너무 예쁘다고 마음에 들어했다. 연못에 비친 귀부인의 탑은 아름다웠지 뭔가 애잔함을 느끼게 했다.


그토록 감탄을 하며 보고 나온 궁전을 다시금 바라본다. 갑자기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수백 년 전 이 공간을 거닐었던 주인은 이미 라지고 이제는 비어버린 이 곳을 지나는 여행객의 눈에 비친 궁전의 모습은 왜 이리 외롭고 허무해 보이는 걸까. 한바탕 꿈을 꾸고 깨어난 것만 같다.


알카사바 (Alcasaba)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적으로부터 궁을 지키는 요새이자 성채이다. 당시에는 4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군사들의 주거지나 당시 군사 시설을 엿볼 수 있었다.



적을 경계하기 위해 가장 높이 세워진 벨라의 탑 (Torre de la Vela)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전경이 보인다. 시원하게 펼쳐진 그라나다 시내의 모습과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멀리 집시들의 거주지인 사크로몬테와 아프리카로 가지 못하고 남은 무어인들이 살았던 알바이신 지구의 집들도 햇빛에 반짝이듯 하얗게 보였다. 여러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이 낯설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라나다 시내 전경
벨라의 탑에서 보는 알카사바의 모습
시에라 네바다 산맥도 보인다.

오후가 되자 마치 여름이 된 것처럼 태양이 뜨거워졌고 우리는 오랜 시간 햇빛 아래에서 걸어 다니느라 지쳐버렸다. 하지만 그늘에서 잠시 쉬고 다시 힘을 내어 들어왔던 길을 돌아가 마지막 코스인 헤네랄리페로 했다.


헤네랄리페 (Generalife)

술탄의 여름 별장인 헤네랄리페. 건물보다 더 많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 같다. 크고 작은 여러 정원과 숲길을 지나 그제야 사진으로 보았던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겨울이라도 나무가 많고 푸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정원으로 들어서고 보니 사진 속의 꽃과 나무, 그리고 분수대의 물방울이 나며 어우러지는 여름 헤네랄리페와는 달리 좀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처연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같다.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애잔하고 신비로운 멜로디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수로의 중정
왕비의 정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던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알람브라를 생각하면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나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 같다.


더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눈부신 태양,

그 아래 고고히 자리하고 있던 궁전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알람브라를 걷고 또 걸었던

어느 2월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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