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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Dec 12. 2020

스페인 최고의 휴양지, 말라가

파라도르에서 하룻밤


말라가 (Malaga)

일 년 내내 뜨거운 햇살 아래 아름다운 해안 지역, 태양의 해변이라는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의 관문.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휴양지 1위이자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인 스페인 최고 관광 도시 말라가.

하지만 말라가는 우리에게는 그리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패키지여행 코스에는 거의 포함되지 않고 자유여행을 갈 때도 보통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는 '네르하'로 가기 위해 들르는 도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가 전경 (출처  : pixabay.com)

내가 말라가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몇 년 전 보았던 여행 블로거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던 작가가 썬베드에 앉아 찍어서 올린 말라게타 해변 사진.

왠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나는 말라가에 꼭 가보고 싶었다.




말라가는 그라나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에서 12시에 그라나다를 출발해 말라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5분이었다. 숙소로 데려다 줄 택시는 말라가 시내를 가로질러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가 히브랄파로 성 쪽으로 들어서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날씨는 거의 초여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더웠고 오랜만에 보는 바다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파라도르 데 말라가 히브랄파로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파라도르 데 말라가 히브랄파로 (Parador de Malaga Glbralfaro)이다.  말라가에서 가장 높은 히브랄파로 성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파라도르는 푸른 숲에 둘러싸여 있고 호텔 앞 공간은 전망대처럼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파라도르 데 히브랄파로
파라도르에서 본 말라가 시내 모습

파라도르는 스페인만의 색다른 종류의 숙박 시설로 오래된 성이나 수도원, 관공서 등을 숙박 시설로 개조한 국영 호텔이고 4성급 이상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훌륭한 서비스, 고풍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 많아서 멋진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다. 스페인 전역에 100개 가까이 되는 파라도르가 다.


한 번쯤 가보고 싶어 알아보니 우리의 여행 루트에서 갈 수 있는 곳은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이렇게 세 군데였다. 하지만 알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그라나다의 파라도르는 1박에 거의 40 만원에 가까운 비싼 가격 때문에 예약할 수 없었다. 말라가의 파라도르는 딸이 회원 가입을 해서 26세 이하 주니어 30% 할인을 받아 119 유로(약 16만 원)에 예약을 했고 론다는 내가 회원 가입을 하고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을 받아 109 유로(약 14만 원)에 예약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예약 시 2인 조식 쿠폰을 주기 때문에 각각 따로 회원 가입을 하고 저렴한 조식 불포함 객실을 예약했다.


파라도르 객실
객실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

체크인 카운터에 예약 바우처와 조식 쿠폰, 그리고 아미고 카드를 제시하고 객실 키와 웰컴 드링크 쿠폰을 받았다. 바로 시내로 갈 예정이라 캐리어를 두기 위해 객실로 올라갔다. 객실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환하고 예쁜 인테리어에 깜짝 놀랐다. 기본인 스탠더드 룸으로 예약해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넓고 세련된 디자인의 객실과 욕실, 그리고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까지 말도 못 하게 멋지다. 규모가 작았던 그라나다의 호텔과 비교되어 더 좋아 보이는 걸까?


※파라도르 예약 팁
파라도르 홈페이지 (www. parador.es/en)에서 회원가입 후 원하는 파라도르를 검색해서 예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예약 시 2인 무료 조식 쿠폰을 제공하고 26세 이하 할인이나 55세 이상 시니어 할인 등 여러 종류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체크인할 때 회원 카드인 아미고 카드(amigo card)를 제시하면 웰컴 드링크 2잔을 받을 수 있다.




가파른 산책로를 따라 말라가 시내를 향해 걸어 내려간다. 그라나다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지배의 흔적이 남아있는 알카사바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에겐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고 알람브라에 가봤으니 외벽만 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말라가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가 나온다.


말라가 알카사바 외벽
걸어서 시내까지

근처에 피카소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는 걸 알지만 시간도 없고 둘 다 피카소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서 역시 패스했다. 말라가의 시내 풍경은 그라나다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동양인 여행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달까.


2월 중순인데도 햇빛 아래에서는 마치 여름처럼 더워서 반팔만 입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였다.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마그넷도 사고 100년 전통을 가진 추로스 카페인 까사 아란다(Casa Aranda)에서 추로스를 먹어보기도 했다. 한국의 추로스와는 맛이 좀 달랐지만 고소하게 갓 튀겨진 추로스를 꾸덕하고 진한 초콜릿에 찍어 먹으니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맥주 안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여유가 있다면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싶지만 이제 바다를 보기 위해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Casa Aranda


바다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처럼 너무나 밝고 활기차다. 바다에는 요트와 크루즈 유람선이 유유히 정박해 있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어디부터 하늘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더없이 맑고 푸르다. 어쩌면 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올해 2월 17일 바르셀로나로 출발할 때만 해도 한국의  확진자 수는 십여 명 정도였다. 그런데 말라가에 도착했던 2월 22일, 한국은 대구 신천지로 인한 코로나 확산으로 엄청난 혼란과 불안에 떨고 있었. 인터넷이나 가족들과의 카톡을 통해 소식을 들었고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중간에 돌아갈 수도 없고 기왕 온 것 지금은 여행에 충실하자고 생각했지만 한국과 대비되는 이 풍경을 보니 왠지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내가 가족들 곁이 아닌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스페인이 더 위험해서 이런 평화로운 풍경은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말라게타 해변 (La Malagueta)

드디어 말라게타 해변에 도착! 짜잔!

헐!... 바다가 왜 이래?


건물 그림자 때문에 어두워진 말라게타 해변

오후 5시가 넘어가는 시간, 동쪽을 향해 있는 해변은 주변 건물 때문에 온통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도대체 반짝이는 하얀 모래와 빛나는 파도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가 상상했던 말라게타 해변은 이런 데가 아닌데...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갑자기 겨울이 온 것 같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딸을 굳이 끌고 말라게타 조형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그래... 이제 인증샷 찍었으니 됐다. 허무한 마음을 다잡고 높은 건물들 사이를 가로질러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반대편 해양 공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내가 상상했던 말라게타 해변은 이런 모습이었다.

아까 지나쳤던 해양 공원은 여전히 따뜻했고 해가 질 시간이라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뒤로 두고 조금씩 붉은 하늘을 내보이고 있었다. 서서히 내려앉고 있는 태양빛이 기둥 사이로 눈부시게 비춰오고 파도는 반짝이며 흔들린다.



석양이 잘 보이는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으니 남자 직원이 웃으며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식사 주문을 받으면서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안녕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오! 꼬레아. 반가워. 말라가에는 언제 도착했어?

오늘 도착했어. 내일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이 좋은 곳을 하루만 있는다고? 안타깝네.

다음에는 어디로 가?

론다로 갈 거야.

론다! 정말 좋은 곳이지. 그럼 음료는 뭘로 할래?


출발 전 간단히 배웠던 스페인어로 맥주 주문하는 말을 딸에게 가르쳐 줬는데 써먹을 기회가 왔다.


도스 까냐스 뽀르 파보르 (Dos canãs, por favor 맥주 두 잔 주세요.)


그런데 직원이 잘 못 들었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발음이 이상한가? 딸이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도스 까냐스 뽀르 파보르.

스페인말로 주문하는 거 한번 더 듣고 싶어서 다시 물어봤어.


그러자 직원은 크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긴 지금까지 영어로 대화하다가 맥주 주문할 때만 스페인어로 했으니 우습기겠다.


스페인말은 어디서 배웠어?

옆에 있는 엄마한테 배웠어.

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직원은 괜히 호들갑을 떨었고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빈말인 걸 알지만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자고로 젊어 보인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ㅋㅋ



한바탕 해프닝이 끝나고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식사 메뉴로 감바스와 이베리코 스테이크로 주문했는데 석양에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저녁 시간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도 부산에 살고 있는 나는 항상 바다가 좋았다. 부산 바다와는 다른 색, 다른 느낌을 주지만 눈 앞에 일렁이는 파도를 보니 내 마음도 파도치듯 설레는 것 같다. 야자수가 뻗어 있는 이국적인 거리의 모습과 지중해 바다가 어울려 말도 못 하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는 해가 지고 어둠이 주위를 감쌀 때까지 가만히 바다를 보고만 있었다.





밤이 되니 낮과는 달리 갑자기 추워져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대로 잠들기는 너무 아쉬워서 웰컴 드링크 쿠폰으로 와인을 한 잔씩 받아서 호텔 로비에 앉았다. 올리브와 함께 제공된 와인은 적당히 드라이하고 깊은 맛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는 스페인 와인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었다. 우아한 디자인의 로비에 앉아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와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말라가 바다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던 딸과 나는 한참을 더 얘기를 나누었다. 아름다운 도시의  아름다운 밤이 깊어갔다.



객실로 올라와 창밖을 보니 테라스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멋진 야경이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환상 속 도시를 보는 것 같다. 낮에 레스토랑 직원의 말마따나 우리는 왜 말라가에서 1박만 하기로 했을까... 잠시 후회가 된다.


파라도르 객실 테라스에서 본 야경

아쉬움 가득한 말라가에서의 하루를 가슴속 한 페이지에 하나하나 적어서 저장해 두었다.

다음에 다시 펼쳐서 이어 적을 기회가 있길 바라본다.

다시 만날 때까지... Ciao Mal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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