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과 복잡한 마음을 안고 기치조지(吉祥寺)를 떠났다.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아문 듯 안 아문 듯 오락가락했다.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자주 다니던 길목에 있는 유명한 사립대학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미래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대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해질 마음으로 의도된 짝사랑을 시작했다.
대학과의 짝사랑이 틀 무렵 도쿄의 생활은 감당할 수 있었던 산들바람과 보슬비가 사라지고 예상하지 못한 대형 태풍에 휘말리고 있었다. 내게 닥친 위기는 실의에 빠지게 하는 사랑의 배신도 아니었고, 사랑을 찾고 싶어 끊는 애정의 넋두리도 아니었다. 떠나올 때 가지고 왔던 사상연구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도 아니었다. 아끼고 아껴왔던 생활자금이 바닥을 치면서 압박해 오는 인정도 사정도 없는 현실이었다.
돈의 맛과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근미래보다는 당장 뼛속을 아프게 긁어놓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친구의 소개로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있는 기회가 왔다.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고, 또한 건설 현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가방과 작업복을 준비하면 되지?”
“당연하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
“뭔데?”
“노동자라고 생각해 본 없지?”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야?”
“나도 일하면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다만 일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낮아진 자존감과 다가올 타인의 시선을 견디는 것이랄까? 처음에 자존감이 매우 낮아진 자신이 너무 두려웠어.”
“자존감을 지킬까 아니면 돈을 쫓을까의 문제네?”
“그러나 걱정하지 마 돈을 손에 쥐는 순간 말끔해져.”
친구의 말에 대해서 태연한 척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이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다. 현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되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었다.
첫 출근을 하는 아침이었다. 건설 현장에 대응할 만한 복장을 가방에 넣은 채 절박함과 두려움을 안고 지정된 장소로 갔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듯한 젊은이들과 중년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윽고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재일교포인 듯한 사람이 떠듬떠듬 한국말로 주의사항과 근로 내용을 소개했다.
“일할 때 한국말하면 안 돼, 들키면 곤란해, 일본말 모르면 하이라만 해. 그리고 일은 아주 간단해. 돈은 끝나면 이 자리에서 줄거야.”
그는 매우 투박하게 다그치듯 이야기를 했다. 그 소리는 마치 나에게 대놓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재일교포로부터 안내받은 건설 현장에 도착하자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등이 섞여 있는 듯했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안전모, 작업 장비, 마스크와 안경을 받았다.
마스크와 안경을 받는 순간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로 생기는 위험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라는 생각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단체로 간단하게 현장에서의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몸 체조를 하고 투입되었다.
오늘 할 일은 건설 중인 12층 고층 건물에서 석면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언제가 석면이 발암물질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긴장하면서 눈에 들어온 철제골격에 예쁘게 핀 하얀 석면을 노려봤다. 그러나 자신을 무너트리는 현실이라는 괴물 앞에서 발암물질이라는 석면의 존재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일에 대한 노루마(ノルマ)는 정해지지 않아 마음은 편했다. 가끔 현장 감독관이 와서 현장 상황에 대해서 말을 하면 약간 미소를 지으며 들릴 듯 말 듯 “하이”라고 반응을 해주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일하다 쉬고, 쉬다가 일하는 사이 땀방울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시작한 건설 현장 노동치고는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임금은 당일 현금 지급, 한 시간 일하고 10분 휴식, 점심시간 한 시간, 그리고 약간의 간식 등의 조건이었다. 석면을 떼는 작업의 대가는 만 이천 엔, 그중에서 소개비 명목으로 사천 엔을 제외하면 내 몫은 팔천 엔이 된다. 교통비와 점심을 빼고 나면 약 육천 엔을 번 셈이 된다.
노동하는 과정에서 정착된 피라미드 먹이사슬은 동물 왕국에서만 작동하는 투쟁이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계에서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는 보편적 먹이사슬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공산주의 이론에 기초해 피착취계급으로서 저항하려는 의식보다는 노동할 수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감사했다.
친구의 말처럼 돈이 손에 들어오면서 따갑게 의식했던 시선과 불안감은 일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재일교포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분배 방식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동시에 그 나름대로 납득이 갔다. 생명을 걸고 벌었다는 생각보다는 노동 대가를 그런대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상황에 만족했다.
건설 세계에서의 노동은 동일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작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건설자재와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일본인과 섞여 일하다 보니 그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일하는 방법이나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타인이나 자신이 낙오자처럼 보는 시선을 감내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당을 받은 돈을 주머니에서 꺼낼 때마다 돈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인물이 포식자 최하위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봤다. 그와의 마주침은 결코 멸시나 따가운 시선이 아니었다. 품 안에 있는 돈의 가치를 알게 해 줬다.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돈에 매여가는 자신의 모습’이 높게 부상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돈을 버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노동자이었기에 많은 생각에서 오는 갈등은 잠잠해졌다.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라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변명은 그곳으로 질주하게 하였다.
나는 종종 학교를 쉬고 건설 현장으로 직행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공식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매일 들어오는 돈과 쌓여가는 돈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재미보다는 돈을 만지작거리는 재미가 더 있었다. 돈이 돈을 불렀고, 내가 돈을 쫓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돈을 벌게 하였지만 필요에 의해서 건설 현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돈의 맛과 마력이 행복을 부른다.’는 인식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속히 박혔다.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더욱 만끽하고 싶었다. 돈이 주는 맛과 행복을 찾는 돈벌레가 되어 대가리 들이밀고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자신의 목표가 사라지거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고, 오로지 돈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인물의 웃음만이 있었다. 돈에 대한 맹신이 생기면서 마음은 점점 풍부해졌고,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나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타인과 자신의 시선을 버리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전철을 기다리다 우연히 마주친 거울에는 큰 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웃는 자신과 매우 닮은 건설노동자가 있었다. 시선을 피하고 싶어 눈을 피했지만 그는 뚫어지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리타 공항에서 개 거품을 물고 일본인을 욕했던 청년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처지를 보니 나는 그 젊은이의 말대로 ‘그 건설노동자’가 되어 돈을 벌고 있었다. 출입국 심사대의 ‘일본인의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대로 좋은가?’라는 생각이 질주해 오는 전철의 창문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파편이 되어 사라지는 것은 돈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대로 돈이 주는 행복에 젖어 단순하게 살아갈지 아니면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돈의 쓴맛을 보며 견뎌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망설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마음에 새겨두었던 목표를 헐떡거리며 깊게 갉아먹었다. 돈이 모자라는 것은 벌어서 대응할 수 있지만 목표를 잃은 것은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에게 목표를 잃고 가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강물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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