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변함없이 정신 줄을 놓고 터덜터덜 혼자서 학교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오빠!”
뒤에서 약간의 떨림이 있으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를 같이해요. 항상 혼자 가시니...”
눈에 익은 여학생이 말을 걸었다. 같은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았으나 가끔 대화를 나눈 정도이어서 무심하게 쳐다봤다.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고 가까이에 있었던 적도 없었다. 오빠라는 한마디에 그동안 절망으로 쌓아진 벽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던진 오빠라는 정겹고도 애처로운 소리가 얼마 전에 잃은 여동생이 불렀던 ‘오빠’라는 목소리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가와서 마치 연인 사이라도 되는 듯이 친밀하게 팔을 끌었다. 가는 선으로 섬세하게 구성된 얼굴에는 항상 밝게 대하는 친절함과 부드러움이 넘치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김 상(金さん)이었다. 평소에 그녀는 낯선 땅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녹여줘 반전시키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다.
종종 튀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주목을 받는 여성이었다. 오늘은 검은 정장 투피스를 입고 짙은 보랏빛 바탕에 선명한 하늘색이 섞인 화려한 스카프를 했다. 그녀의 패션은 밤하늘에 떠다니는 별들의 향연처럼 반짝였고, 맵시는 잔잔하게 늘어진 버들가지였다. 얼굴은 파란 하늘에 섞여 있는 하얗고 귀여운 뭉게구름을 연상하게 했다.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흔들리는 잎새의 부딪침으로 살랑살랑 조용하게 다가왔다. 눈에는 맑은 샘물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녀의 식사 제안에 동의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같이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쇼핑하기도 하고, 근거리에 있는 이노가시라(井の頭)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김 상은 일본 생활에 매우 익숙해 있었다. 생각과 행동도 자유로웠다. 돈을 사용하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큰 쇼핑은 아니었지만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스타일이었다.
가끔 수업을 빼먹고 행방을 감추기도 하였고, 낯선 승용차가 와서 홀연히 데리고 가는 상황도 있었다. 만나는 날에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 그녀의 상황에 대해서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것이 우리만의 이해였고 규칙이었다. 김 상과 나는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필요할 때 잠시 옆에 있어 주면 되는 그런 만남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김 상(金さん)과 하야시 준코(林順子) 선생님은 모녀처럼 여길 정도로 매우 친밀했다. 어느 날 김 상은 묻지도 않았는데
“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하며 말을 꺼냈다.
본의 아니게 급하게 일본으로 오게 된 후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이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안 하야시 선생님은 치과 의사인 부군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해주고 거주할 수 있는 방을 내주는 제안을 수용했던 것이다.
50대 중반 여성인 하야시 선생님은 유학생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고, 남다른 애정을 갖고 대응을 하여 인기도 있었다. 선생님은 큰 저택을 갖고 있었고, 자신 소유의 저택 옆 건물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하고 있었기에 여유와 재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김 상은 자식이 없는 선생님 부부가 사는 큰 저택의 설렁함을 나름대로 채우고 있었다.
귀가하면 병원 일과 가사를 돕게 되면서 마치 가족의 일원처럼 행동하였다. 김 상은 입양된 딸이 아니었지만 선생님 부부를 부모님처럼 생각하였다. 하야시 부부는 딸처럼 여겨 많은 것을 아낌없이 내어줬다. 김 상은 항상 친절함을 베풀고 있는 하야시 부부에게 감사했다.
나는 종종 연구할 주제에 대해서 하야시 선생님에게 상담하곤 했다. 선생님은 금요일이 되면 식사 초대를 하여 주말에 집에 들르도록 하였다. 선생님 댁을 방문하면 가끔 음식 재료를 갖고 가 김 상과 함께 간단한 한국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일본인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여름이 되면서 이곳저곳에는 마쓰리(祭り)가 열렸다. 어느 날 하야시 선생님은 동네 마쓰리에 김 상과 함께 참가하도록 권유를 했다. 큰 누님과 같은 품성을 가진 선생님의 제안에 거절이란 사전에 없었기에 기분 좋게 응했다. 이번 동네 마쓰리는 선생님 부군이 간진모토(勧進元)가 되어 주관하는 것이라고 했기에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자세로 참가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당일이 되어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마쓰리 복장을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알룩달룩한 옷을 보여줬다. 선생님은 브라운관이나 그림책에서 봤던 훈도시(褌) 모양을 한 전통적인 마쓰리 옷을 착용하도록 했다. 주저주저 망설이자 선생님은 웃으면서 다가와 입혀주려고 했다.
“자자, 아주 간단해요. 옷을 벗어요. 괜찮아요.”
선생님은 나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옷을 벗는 순간 뒤로 돌아선 선생님 앞에는 큰 거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아줌마라 괜찮아요.”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버렸다.
헐렁한 겉옷은 껍질이 벗겨진 땅콩처럼 된 기분이었고, 짝 달라붙은 반바지는 어린 시절 동생옷을 걸친 기분이었기에 어색했다. 그러나 매우 홀가분했다. 옷 입은 모습을 보고 선생님과 김 상은 일본사람처럼 보인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마쓰리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했다. 이미 그곳에는 마쓰리에 쓰이는 도구와 필요한 물품이 갖추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복잡했다. 마쓰리 행렬이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젊은 남녀가 미코시(御輿)를 들었다.
“왓쇼, 왓쇼”
질러대는 함성은 사람이 살아 있음을, 이 동네가 하나라는 것을 알리는 듯했다.
참가자가 격하게 표출하는 흥분된 마음이 도로에 쌓이기 시작했고, 흥겨움은 담벼락의 높이를 낮추고 있었다. 거리행진이 지속되면서 들고 있는 미코시가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거렸다. 교대할 시간이 된 것이다. 하야시 선생님은 미코시를 들도록 내 손목을 잡고 끌어 행렬에 참여하도록 했다. 나는 선생님 앞에서 미코시를 들고 발걸음과 호흡을 같이 했다.
미코시 행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뒤에 있는 선생님과의 몸 부딪침이 잦아졌다. 이따금 뒤돌아보면 선생님은 소녀와 같은 해 밝은 웃음과 멋들어진 몸짓으로 호응을 해줬다. 눈빛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듯했고, 흐르는 땀과 섞인 눈물은 환희와 슬픔으로 다가왔다. 발산하는 포효는 천진난만하게 아름다운 광기로 피어났다.
광기라는 것은 통제를 잃고 미쳐가는 울퉁불퉁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으로부터 강하게 느끼는 광기는 결코 균형을 잃거나 난폭한 감정이 분명 아니었다. 왜곡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었고, 굴곡이 없는 자연스러운 눈빛이었고, 숨기지 않는 감정이었고, 빽빽하게 쌓아온 환희의 빛이었다.
동네를 몇 바퀴를 돌고 나니 미코시 행진은 휴식에 들어갔다. 얼굴과 몸은 이미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옷가지를 적신 땀은 마음속으로 스며들었고, 몸체는 향기로운 인간의 냄새를 품어냈다. 하야시 선생님과 함께 나무 아래에서 거친 호흡을 내쉬고 응원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행진하는 가운데 느꼈던 순간에 대해서, 마쓰리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하야시 선생님의 부군과 김 상이 먹거리와 음료수를 갖고 왔다.
김 상은 환하게 웃으며 갖고 있던 스카프로 땀을 닦아주려고 했다. 처음 ‘오빠’라고 부를 때 둘렀던 바로 ‘짙은 보랏빛 바탕에 선명한 하늘색이 섞인 화려한 스카프’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그것을 두르면 용기가 난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손으로 땀을 훔치며 사양했다.
“괜찮아. 오빠, 이 스카프는 오빠가 가져!, 또 사면되지.”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아니듯이,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어. 그렇게 보일 뿐이야. 소중한 것이니 아주아주 나중에 효험이 다하거든...”
이윽고 점심으로 마련된 명품도시락을 선생님과 부군, 김 상과 같이 나누어 먹었다. 휴식은 일하며 땀을 흘린 자에게, 도시락은 허허벌판에서 열심히 일해 허기가 진 자에게 환상의 궁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쓰리라는 명분으로 여유를 잃은 나를 건져내려는 선생님의 배려에 감동했고, 팍팍한 생활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어 행복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눌리지 않도록 궁둥이를 토닥거리며 격려해 주던 마음은 도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특급의 마음이었다. 김 상과 나는 선생님을 만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
저녁 너울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모두가 둘러서서 삼봉 지매(三本締め)를 하고 마쓰리는 깨끗하게 마무리되었다. 여름날의 뜨거움도, 마쓰리의 열정도, 선생님과 부딪치며 생겼던 설렘도 식어가면서 하루를 접었다. 마쓰리를 마치며 사람은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마쓰리 복장을 갈아입기 위해 선생님 택으로 향했다. 선생님 부부가 사는 집은 그곳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생각만 하면 가장 편안한 안식처라는 인식이 박여 있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려는 순간 하야시 선생님은 늦었으니 하루 자고 가라고 권유를 했다. 그 저택의 편안함과 선생님의 권유는 끌어당기는 강한 힘을 갖고 있는 듯했다.
나는 김 상이 이야기한 것 이외에는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선생님 부군은 내가 공부하려 일본에 왔다는 것만을 알았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족이라면 아마도 그런 눈빛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선생님 부부가 하는 말을 듣기를 좋아했고, 나 또한 서슴없이 말하는 싶은 대로 말을 했다.
나는 주문으로 배달된 초밥(寿司)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끊임없이 수용해 줄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저택과 밤하늘을 보면서 외쳤다.
“평화다. 행복하다.”
나의 부모는 아니지만, 내 여동생은 아니지만, 내 가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속으로 길고 크게 질렀다.
집안에도 어둠이 깊어지면서 각자 잠자리로 향했다.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안내해 준 게스트 룸으로 쓰이고 있는 거실에 붙어있는 구석방으로 갔다. 하야시 부부와 김 상은 이층 방으로 향했다. 행복하게 손잡고 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부모와 딸로서 걸어가고 있었다.
침대에 눕자 하루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하야시 선생님의 아름다운 율동과 웃음을 안은 채 잠 속으로 빠졌다. 가늠이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귓가에 잔잔한 소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잠시 뒤척이는 가운데 이곳이 어딘지, 몇 시 인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눈을 떴다.
잠시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보니 가느다란 숨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왔다. 작고 부드러운 결을 가진 김 상의 신음소리였다. 갑자기 닭살이 돋았고 머리가 서는 것 같은 전율이 왔다.
“설마 그렇지 않겠지, 아니야, 아닐 거야!”
나는 확신 없는 의구심을 가진 채 멍하니 오랫동안 천정만을 뚫어지게 봤다. 잠이 완전히 깼기에 어찌할 줄을 몰라 기다렸지만 멍한 가슴은 사라지지 않았다. 갑갑해서 거실로 슬그머니 나왔다. 누군가 속옷 차림으로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김 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김 상이 내려오기에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김 상은 다가와 나를 안았다. 억지로 몸을 밀었다.
“오빠 이대로 있으면 안 돼?”
그녀는 흐느끼듯 속삭였다. 나는 굳어버린 시체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속옷 차림이 된 김 상을 안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아니 어떤 일인지 알고 싶었지만 물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의구심이 사실이든 아니든 하야시 선생님이 만들어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준 이 상황을 깨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비밀이든, 김 상만의 비밀이든, 둘만의 비밀이든, 세 사람 간의 비밀이든, 네 사람 간의 비밀이든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녀를 달래야 한다.’는 일념으로 늘어트린 어깨를 토닥였다. 진정으로 걱정이 되어서, 그리고 가슴 깊이 파고들어 정착해 맴돌고 있는 오빠의 심정으로 속삭였다.
“밤이 너무 깊었어. 들어가자.”
“오빠.....”
눈물이 났지만 보일 수가 없어 그녀를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설픈 마음으로 아침을 맞을 자신감도 없었다. 서로 오고 갈 눈빛을 통해서 진위를 가늠하듯이 보는 것도 두려웠다. 더욱이 누구를 향해서 어떤 말을 걸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 순간 내 몸으로부터 가슴과 마음이 빠져 아려졌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기쁨과 자유를 완전하게 잃은 듯했다. 어둠이 걷히기 전에 홀로 집을 나왔다. 선생님과 부군, 김 상과 함께 만들어왔던 일본에서의 평화가 사라지지 않고 지속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편안함과 행복을 안겨주었던 큰 저택에 어떤 비밀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마음속에 묻고 발길을 옮겼다.
편안함은 불안함의 전조현상이다. 행복은 불행의 전조현상이다. 평화의 끝은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면서도 사람이 사람을 망가트린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사랑의 적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큰 저택의 비밀은 내 마음속에 생긴 심증이었고, 억측과 추측뿐이었다. 그 이외에 아무도 몰랐다. 그 이후 나는 아무런 억측과 추측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가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바람은 불던 방향으로 지나가지 않고 정체되어 회오리를 일으켰다.
선생님과 김 상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김 상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괴소문이었다. 나는 정확하게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후로 김 상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괴소문을 알아챈 하야시 선생님도 사표를 내고 사라졌다.
진위와 관계없이 김 상이 걱정되어 수소문했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선생님 댁을 가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홀로라는 인식이 오는 인간의 법칙에 다시 노예가 되고 말았다.
두렵고 어두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시 고독한 생활로 돌아갔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단순한 생활이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강한 이기주의적 편견이 나를 지배하였다. 오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나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심정으로 뜨는 해에 기대어 해 오던 대로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행위를 반복했다.
날이 갈수록 기치조지(吉祥寺)에서 생긴 행복과 불행을 마음속에 묻어두었지만 깊게 드리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이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등교하는 날이었다. 지정석이 된 나의 책상 위에 예쁘게 포장된 소포가 놓여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김 상의 ‘짙은 보랏빛 바탕에 선명한 하늘색이 섞인 화려한 스카프’가 말없이 눈빛을 빨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