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사상의 몰락

by 청사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강일 아침이 되었다. 도자이센(東西線)의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에서 승차하여 기치조지(吉祥寺) 역에서 하차하는 긴 여정이었지만 기분은 복잡하면서도 상쾌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학교에는 혼자만이 있었다.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고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읽으며 아무나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면서 한 학생들이 들어와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오하이요우, 한국 사람?”

“하이.”

얼굴을 보니 한국 사람은 아닌듯했다.

“중국 사람입니다.”

겸연쩍게 웃는 순간 신분을 말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중국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출국하기 전에 받았던 ‘반공교육’이 떠오르면서 긴장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급하게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책을 보여주며 급하게 영어로

“이 책을 봤니?”

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안 읽은 것인지 본 적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고개를 흔든 것처럼 《유물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 상황에서는 내 마음의 혼란을 제외하면 그와 나 사이에 냉전과 같은 거대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머릿속을 꽉 채워왔던 ‘반공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미 중국인과 말을 섞었기 때문에 반공 교육의 효과는 날아간 듯했다.

‘중국인은 공산주의자일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마음이 묘해졌다. 그러나 이념에 기초했던 긴장감이나 거북함은 눈앞에서 평범하게 이념이 아니라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중국인을 보면서 금방 사라졌다. 그냥 일본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배움의 장소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것일 뿐이었다.

학교생활이 시작하면서 한국인, 중국인, 대만인, 일본인이 모인 ‘여기에는 이념에 젖어 살던 상황과 시대가 전혀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숨어서 ‘반공에 반하는 행동으로 받았던 공포와 반공 알레르기’로부터 해방되는 듯했다. 동시에 한국에서 숨어서 읽었던 《공산주의선언》에 대한 편파적 애정이 급격히 식어버렸고, 애증의 대상이 된 공산주의의 현주소가 무너지는 현장을 직접적으로 목격했다.

일본에서 자유롭게 노동하여 돈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자본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중국인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있는 중국인은 표면적으로 이미 공산과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벗어난 자유인이었다고 판단되었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일본에서 사상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자유롭게 공산 사상을 연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공산주의의 유용성과 효용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런 인식은 일본에서 연구하려 했던 공산 사상이 유통기간이 지난 불량품이 되지는 않았는지? 사상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미 퇴물이 된 사상이 된 것은 아닌지?라는 의구심을 낳았다.

이미 이념을 초월해서 친구가 되고 있었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돈에 대한 애착, 개인적 소유와 행복, 치열한 경쟁, 생각하는 방법, 패션, 일상생활 등이 닮아 있었다. 중국인 학생은 노골적으로 선생님을 좋아하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중국인은 ‘데이트를 하자.’는 한국인의 제의도 스스럼없이 수용했다. 냉전에 매몰된 한국인은 중국인의 감정과 생각이 잘 소통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대만 출신과 중국 출신의 남녀가 연인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인과 중국인과의 공존, 대만인과 중국인과의 공존, 반공과 공산의 무용성 등이 존재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반공 논쟁이 사라지고 타인과의 경쟁, 개인의 행복을 강조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공산주의를 연구할 가치가 있는가?’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이념에 매여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 혼자라는 사실만을 알게 되었다.

일본 사회에는 국가 간이나 사람 간의 이념과 반공논쟁이 종식되었고, 오로지 실력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더 이상 좌익사상의 현재성과 시대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지?’라는 급박함이 회오리치면서 일본에서 얻어 가려고 했던 목표가 흔들렸다. 단순하게 일본에서 만난 중국인의 존재와 그 존재를 무한정 인정하는 일본사회를 통해서 나의 인생 목표가 날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서 이념 간의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벌였던 반공 정책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념논쟁이 작동하고 있는 한국적 현상을 특수성으로 치부하여 권력작용으로 따르라고 했던 강압에 위축되었던 자신과 그것을 피해 여기까지 온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더욱이 그런 프레임에 놀아나 공산 사상의 유용성을 굳게 믿은 자신의 늦은 통찰에 대해서 극도로 분노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이끌어온 이념과 방향성이 크게 손상을 입고 말았다.

연구하려고 했던 ‘사상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직감하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이 흔들렸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라진 공산주의와 시대를 잡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학문적 연구를 해보지도 못하고 사용설명서가 바랜 사상과 시대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나는 벽에 대고

“이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바카야로(馬鹿野郎)!, 반공은 무슨 반공....”

나는 누군가를 질타하기 위해 강하게 소리쳤다. 현해탄을 건너며 가졌던 희망 스케줄의 근거가 되었던 공산주의를 점프한 미래사회에 있는 자신이 되고 말았다.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반공에 매여있는 한국이 아니라 반공에서 해방된 일본에 있다는 사실만을 인식했다.

머릿속이 엉클어지면서 상실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표를 잃는 것은 물론 자신과 미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험악한 예감을 느꼈다. 점점 무서워진 현실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절망이 엄습하면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숨소리로 연명하는 자신과 다가와도 살아지지 않는 시간에 무감각해졌다.

나는 점차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사상연구라는 목표를 확실하게 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상황이 점점 자신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마음을 빈곤하게 했다. 새로운 출발이 주는 기회는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여기에 남아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했다. 도쿄의 출발선에서 일생을 무너지게 할 만큼의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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