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꽃이 있다. 거칠게 용솟음치는 박동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를 닮았다. 언제 피는지 언제 사그라드는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물과 같은 천의 얼굴을 가져 꿈틀거리는 느낌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내 심장에는 전쟁과 같은 불꽃이 생명 활동을 시작한 듯했다.
꽃을 피워야 하는 이유가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기에 집을 떠나야 피어나는 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안에 있는 꽃과 내가 안주하는 집은 그렇게 잔혹하게 반대편에 있었다. 당장 집을 잃었기에 거미가 집을 짓듯이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하지만 살아있는 꽃을 피워야 하는 집이어야 했다.
내 안에 있는 꽃을 피워야 하는 이유는 기존에 형성된 유연으로 이어진 삶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삶에 대해서 만족해서도 아니었다. 지금 내 심장에 있는 꽃은 숨을 쉴 수 있는 틈이나 공간이 점점 좁아져 고사 상태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기에 있는 미래의 꽃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아있을 용기가 이미 소진됐기 때문이다.
무연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생의 불균형을 교정할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꽉 막혀버린 공간을 비울 수 있는, 그리고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집이 없는 곳으로 가면, 새로움과의 인연, 거칠지만 푸릇한 삶의 싹이 돋아 길고 질긴 유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그러나 물과 가름과 같은 낯선 조합의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 적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서 살아야 하고 정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백한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배우거나 우연히 터득하는 것, 도박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불어오는 자연풍에 맡기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삶을 앞에 놓고 하나를 접고 다른 하나를 찾으러 가고 있었다.
삶이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어머니 뱃속에서 벗어나려 큰 울음을 낸 대가로 내려진 천벌이거나 축복인지도 모른다. 삶을 사는 것은 피비린내 내면서 얻는 행복을 쌓는 숭고한 업이기도 하다. 삶을 이어가는 것은 순간을 소진하여 짧아지고 있는 생명을 부활시키는 인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명이 주어지면서 시작된 삶은 잘 달리다가도 가끔 아무렇게나 브레이크가 걸리거나 고장이 나 삐걱거리는 열차이다.
나의 열차는 브레이크가 걸린 것인지 아니면 고장이 나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가끔 순정으로 표출되어 단순하게 선택하던 본능과, 이따금 열정으로 표출되어 복잡하게 선택하던 이성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어리둥절한 본능과 이성이 불안정하게 삶을 끌어가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과정에서 두툼하게 쌓아 올린 상처의 언덕 위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움직였다.
나는 수수께끼와 같은 삶이 숨어있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뚜렷하게 주어진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공항 전철에 몸을 맡겼다. 명확하게 정해진 곳을 향해서 당당하게 질주하는 공항 전철보다도 자신의 삶이 훨씬 더 허술하고 난폭했다. 지난 삶이 멍하니 응시하는 차창 밖으로 아우성치며 떠나갔다. 은밀하게 밀려와 안착했던 알지 못한 삶들도 함께 쓸려갔다. 낯선 삶을 채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작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이미 길바닥 위엔 많은 삶이 나뒹굴었다. 귓가에 들리는 삶과 들리지 않는 삶, 눈으로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이 엉클어져 있었다. 본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여행객들의 옷자락이 스치는 것은 삶의 소리였다. 아름답게 때로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시선은 삶의 색깔로 다가왔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수용되지 않은 것들이어서 불안했지만 순간순간 예고 없이 나타나 살짝 부딪쳐주는 낯선 웃음은 새로운 삶의 희망이었다.
홀연히 떠나는 이 미지의 길은 마치 전 재산을 도박 판돈으로 걸어야 시작되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올인하는 손의 떨림도, 이별하는 눈의 흔들림도, 내딛는 발길의 망설임도, 크고 작은 미련과 아쉬움 그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혼돈으로 쌓이고 있는 무게를 안고 떠나야 했고, 제자리에 있거나 멈추는 여정이 아니기에 움직여야 했다.
목숨을 건 여정은 손에 쥐어진 달랑 편도의 반쪽짜리 승차권에 의지하여 시작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갈 수만 있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직감하기도 전에 매우 험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왜 그런 편도의 운명에 놓였는지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귀향이라는 말이나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은 사치에 불과했다. 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모든 상황이 매몰되었다.
복잡한 마음이 이곳저곳 벽들과 충돌하면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한구석에 어그러진 채 처박혔다. 이정표도 없는 길에서 헤매는 모습을 향해 투박하게 벌리고 있는 어머니의 허름한 품이 그리운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희망으로 포장된 지금의 떠남이 행복 패스권을 소유하는 대신에 찢어질 수도 있는 미래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겨우 버텼다.
눈을 감고 회상에 젖는 순간, 이 시간과 이곳이 단절의 시작이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잠시 일어날 바람이나 흔들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이 만든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거칠어질 숨소리는 시퍼런 칼날과 같은 경고음으로 들렸다.
가야 할 시간이 된 나에게는 두 갈래 웃음이 있었다. 마중 나왔던 어머니와 여선생에게 겸연쩍게 보낸 웃음에는 사랑, 희망, 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궁지로 내몰았던 것들에게 보내는 웃음에는 확실하게 앙갚음, 복수, 후회가 있었다. 그렇게 사랑과 감사, 앙갚음과 복수가 뒤섞인 채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했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문 앞에서 무서운 노크를 시작했다. 지옥의 문이나 천국의 문으로 수렴될지도 모르는 채 현해탄을 건너면서 생겨버릴 미지의 세계로 항해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굿모닝?” “오하이요?”(おはいよう) 스튜어디스의 인사말과 웃음이 마음 편하게 다가왔지만 낯선 곳을 향하는 눈과 귀를 쭈그러트렸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물씬 풍기는 자세, 질끈 동여맨 머리칼, 단아하게 화장한 얼굴, 상냥한 말씨는 서먹함을 녹여주었고, 가끔 마주치는 의미 없는 눈은 의미 없는 불꽃이었다. 그런 인사말과 웃음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제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열열한 응원과 엄중한 경고였다.
대학 시절 ‘반공은 가짜였고, 민주화는 진짜였다.’는 찌든 논리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표시였다. 억압을 정당화하는 신호등을 무시하기 위해 ‘건너려 했던 빨간 불과 멈추려 했던 파란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유를 향해 가고 있는지 구속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시야를 사로잡은 광경은 마징거 Z 캐릭터가 그려진 하얀 티셔츠와 하얀 청바지를 입고, 옷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문신을 한 중년 부부였다. 그들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진한 삶의 향기를 내뿜었다. 그 순간 ‘10년 후 자신이 만든 삶은 어떤 향기를 낼 것인가?’하는 질문으로 그들의 진한 향을 흡입했다. 막 새롭게 시작한 삶의 첫 장은 알 수 없는 중년 부부에 대한 의아함과 질투로 시작됐다.
칙칙한 공기가 감싸는 공항에 발을 디뎠다. “PASSPORT” 예상하지 못한 강한 철이 부딪치는 소리에 긴장을 했다. 얼떨결에 반사적으로 “HERE YOU ARE.”라고 던져버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출입국심사를 하는 일본인의 입놀림과 손놀림을 보면서 없는 죄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기고 말았다.
“WAIT A MINUTE, PLEASE.”
날카로운 거절과 구겨진 얼굴은 새로운 시작의 환상을 말끔하게 깨버렸다. 희망으로 두드린 문은 그렇게 무겁고 냉정하게 닫혀있었다. 출입국심사에서 통과시키지 않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죄지은 죄수처럼 안내하는 대로 끌려갔다. 주위를 보니 입국을 거절당한 한국인들이 안절부절 서성거렸다.
기댈 곳이라곤 빈 의자 밖에 없었다. 엉덩이를 빼서 쭉 들이밀고 앉았다기보다는 철퍼덕 쓰러지듯 기댔다. 불안한 눈빛을 가진 자신, 체념한 듯한 젊은 여성, 간절해 보이는 나이 든 중년여성, 경험이 있는 듯한 젊은 남성도 있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싶어서, 거절당한 상황이 부끄러워 비 내리는 창밖을 보다가 하얗게 성에가 낀 유리창에 희미하게 비친 자신을 그렸다 지웠다 했다.
그 순간 한 젊은이가 이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라도 하려는 듯이 말을 했다. “일본인은 아주 나쁜 놈들이야. 한국인을 얕잡아보고 있어. 우리를 일본에서 돈만 노리는 돈벌레로 보고 있는 것 같아.”라고 변화될 우리의 신분을 말했다.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의미인지를 묻지 않았지만 그는 서슴없이 “당신은 공사장 노동자로, 아주머니는 주방의 아줌마로, 젊은 여성은 호스티스나 바걸로 보고 있어, 그렇게 의심해서 거취를 확인하려고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거야.”라고 강하게 말을 했다. 청년의 한 마디에 모두가 경제난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졸지에 경제난민, 예비 노동자로, 주방 아줌마로, 호스티스로 둔갑됐다. 그러나 그런 말을 뒤집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바지와 줄무늬 티셔쓰를 입고 검은 얼굴을 한 나의 모습은 말 그대로 노동자 그 자체였다. 출입국관리인은 이후 절차를 진행해 주었다. 3개월 비자를 6년 유학이라고 기록한 오류를 정정하고 일본인의 쇳소리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 입국했다.
그러나 경제적 난민, 노동자, 호스티스, 돈벌레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청년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일본인이 보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은 편견이 아니라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전율이 왔다.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쿄(東京)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도쿄의 땅을 밟았다.
공항의 빡빡한 관문을 지나 밀려오는 공기의 순도와 냄새를 맡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독소를 마시고 있는 것인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콧속으로 밀려온 것은 오랫동안 달려오다 지쳐버린 신체의 짠 소금 맛이었다. 둔탁하고 칼칼하게 다가와 거절하고 싶었다.
도쿄의 애매한 공기는 길게 호흡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할 것이라는 애초의 바람은 잘못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다. 시계는 고장이 나도 시간은 변함없이 가는 것처럼 삶은 무너져도 희망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윽고 도쿄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도쿄의 잡초로 살 수 있는 곳에 온 것을 환영해!”라고 첫 성을 날렸다. 그 친구는 친화력도 있고, 화술도 좋았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움 반 반가움 반으로 친구와 악수를 했다. 낯선 땅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친구의 목소리는 아름다웠으며, 미소는 예술이었고, 패션은 명품 그대로였다. 그가 마련한 도쿄 입성 환영 인사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명품연설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가 말했던 ‘도쿄의 잡초’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리타(成田)에서 공항열차 스카이 라이너(Sky Liner)를 탔다. 날렵한 몸매를 가진 외관과 쾌적하게 조성된 실내 공간은 졸아 있는 마음을 더욱 위축하게 했다. 동행하고 있는 큰 봇짐은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이윽고 공항 열차 안에 앉은 얼굴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창 밖에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걱정도 더욱 빠르게 타들어 갔다.
이제 스카이 라이너를 내리면 진짜 도쿄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나를 지배했던 철학, 이념, 희망, 사고, 실천, 역량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 과거는 미련 없이 버리고 왔지만 당장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묘안은 아무것도 없었고, 머릿속은 맹탕 그대로였다.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이내 낯선 풍경은 언제나 익숙했던 암흑으로 빠져들면서 안심이 되었다. “그래 어둠은 어디에서나 같은 것이야. 잘 사는 놈이나 못 사는 놈이나,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에게 어둠은 어둠일 뿐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어둠의 평등성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이윽고 공평하게 내릴 기회를 누리 수 있는 하차 역에 도달했다.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짙은 어둠 속을 헤집고 살아갈 도쿄의 집에 왔다. 외관은 새까맣고 거칠었으면서도 작고 아담했다. 친구는 제일 먼저 일본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라며,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그리고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작은 방안에는 잠잘 수 있는 공간, 부엌, 이불을 놓을 수 있는 농, 신발장 등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검고 큰 바퀴벌레가 방안을 횡단하며 사라졌다. 조금은 놀랬지만 그놈도 동거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듯했다. 가난한 유학생이 살아가기엔 좋은 곳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이 상황을 빨리 받아들였다.
어둠이 걷히고 나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되도록 깊고 길게 자려고 했다. 그러나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말았다. 크게 하품을 하며 생긴 눈물을 머금고 창문 밖을 봤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이른 새벽에 잠을 깬 이름 모르는 잡초가 눈물을 머금은 채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하는 ‘도쿄의 잡초’가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첫 밤을 지내며 잠을 설친 곳은 도쿄에 있는 조용한 조시가야(雑司が谷)라는 동네였다. 유명 사립대학 주변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옛날 주택으로 월세가 저렴했다. 그리고 도심으로의 접근성이 좋아 일본 출신의 지방유학생이나 외국 유학생이 임시 거처로 머물다 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자리를 잡거나 형편이 좋아지면 바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자극하는 곳이기도 했다.
잡초와의 눈 마주침의 여운을 안고 주위를 익히기 위해 길을 나셨다. 골목길은 어디로 연결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좁고 꼬불꼬불한 길은 마치 혼란에 빠진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길고 가늘게 놓인 길목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도달한 곳이 끝이 되었고 동시에 시작이 되는 그런 골목이었다. 자연스럽게 터벅터벅 걸으면 되었고 다음 골목이 궁금해지는 길이어서 좋았다.
골목길을 걷는데 어느 순간 높은 담벼락을 가진 집들이 시야를 가렸다.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높고 두툼한 담벼락과 갑자기 넓어진 길은 속을 뚫어주는 느낌이었지만 자신의 신분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어제 잠자리를 한 곳과 조금 전에 걸어온 길목과는 매우 대조적이어서 위화감을 가졌다. 여기에서 친숙해질 수 있는 것은 아침에 눈물로 인사하던 잡초, 아늑하게 품어주는 좁은 길목, 그리고 작고 허름한 집이었다.
궁금증과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이 길에서 ‘알지 못하는 일본 사람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자전거를 타고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은 있어도 동일한 눈높이와 발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속도를 내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의미 없는 시선을 던져주면 족했다.
살아있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돌아온 순간 아침 먹거리를 구해야 한다는 원초적 본능이 발동했다. 형광등이 유난히 환하게 켜진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과 녹색 글귀를 가진 세븐일레븐(セブン-イレブン)이었다. 먹고사는데 가장 필요한 행동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상점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지 못했다. ‘말을 걸면 어떻게 하지, 거스름돈은 어떻게 받지?’라는 망설임이라는 가장 못나고 지루한 대응 방식에 사로잡혔다.
앞을 보이면 지는 것이고 등을 보이면 이길 것이라는 비굴한 상황 논리를 갖고 반짝이는 문을 등으로 밀고 들어갔다. 곁눈으로 점원이 있는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점원은 이미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했다는 듯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가볍게 인사를 했다. 말은 비밀을 깨기도 하고 비밀을 지키기도 한다. 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말을 하지 않는 선택을 했기에 상품 진열대로 돌진했다. 그때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도시락이 눈에 들어오면서 불현듯 ‘선진국 일본’이라는 생각과 ‘일본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할 만한 기준이나 여유도 없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시락과 익숙한 라면을 들고 만 엔과 함께 점원에게 건넸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점원은 도시락과 라면을 보면서 나를 봤다. 무엇이라고 말을 했으나 알지 못했기에 “하이”(はい)라고 답을 했다. 점원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물건과 잔돈을 줬다. 그때 점원이 했던 말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도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하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 다행이었고, 물건을 산 것에 뿌듯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으로 아저씨를 만난 것에 만족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낯설었고, 지나가거나 교차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로를 지나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집을 잃고 헤매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점과 하얀 점이 잘 조화를 이룬 길고양이였다.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동물과의 만남은 긴장감을 주었지만 혼자라는 동질감이 통했는지 눈 마주침은 길어졌다.
“너 일본말 잘 들을 수 있지? 나는 이제 막 와서 일본어 못해. 그냥 한국말로 할게. 너의 이름은 뭐니?”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무시라도 하듯이 길고양이는 눈치를 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동네에 터를 잡은 모양이었다. “너는 오늘부터 흑백이야. 알았지?”
문명화된 사회의 고양이와 문명화된 사회의 사람은 차이가 없는 듯했다. 부와 가난이 공존하는 문명화된 세계에서 버려진 길고양이의 신세나, 문명화된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혼자 있는 나의 신세가 처량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집 밖에서 사는 고양이나 허름한 집에 사는 자신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어느 것이 먹을 것이고 어느 것이 고양이에게 줄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무엇이든 고양이에게 주면 되는 구성이었다. 닭튀김이 있어 조심스럽게 고양이 앞에 놓았지만 경계하는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주려는 사람이나 받으려는 고양이 모두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거리와 공간을 내어주려 뒷걸음질을 쳤다.
고양이가 품고 있는 긴장감과 낯섦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밖에서 해야 할 일은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 진도를 낼 수 있는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방에 들어와서 비로소 어제 잤던 방안 구석구석을 완전하게 볼 수 있었다. 물가가 매우 비싸다고 하여 바늘과 실까지도 챙겨 온 짐을 풀어 제자리를 찾아줬다.
방문의 정면에는 취사장과 세면장, 왼쪽 창문 옆은 살림 도구, 오른쪽은 옷걸이와 잡동사니를 넣을 수 있는 창고, 중앙은 공부와 식사 겸용의 탁자, 휴식처와 잠자리 등으로 정리가 됐다. 그러나 언제나 불편하게 동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름 없는 바퀴벌레의 자리는 남겨두지 않았다.
적어도 언어 소통은 되어야 외부 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되도록 유상외출을 자제하였다. 챙겨 온 만큼 여기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움직이지 않는 만큼, 물건을 사지 않는 만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쓰지 않는다는 불사용 경제개념을 갖고 촘촘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까지 생계를 부담할 돈을 아껴야 한다는 핑계 본능에 의존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선진국 일본은 세븐일레븐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가끔 일찍 일어나 거리를 나가보면, 쓸만한 가구나 가전제품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도 쓰레기장에서도 선진국 일본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필요한 살림살이는 선진국 일본이라고 부르는 계기를 만들어준 무인무판매 처에서 해결하였다. 길거리 의존형 경제활동은 부끄러웠지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선진국 일본에서 처음으로 획득한 물건은 책상이었다. 주인 잃은 책상 앞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을 갖고 서있다.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면 거래가 성립이 되는 아주 단순한 상황이었다. 이미 거래가 끝났으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들고 갈 수 있을까? 보는 사람의 눈빛을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난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그런 거래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것이 금방 확인됐다. 보는 사람도, 거래조건을 내놓은 사람도, 거기에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망설이든 망설이지 않든 필요한 물건을 들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빠른 손놀림과 발걸음과 쿵쿵 울리는 박동을 벗 삼아 책상을 들고 왔다.
이튿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길거리 사냥에 나섰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사냥감을 잡다 보니 집안에는 살림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충분한 가구와 가전제품이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부자 동네에 얹혀사는 혜택이었다. 욕심을 내어 이동 수단으로 필요한 자전거를 찾았으나 실패했다. 이번에는 정상구매라는 거래로 한 대 마련해서, ‘구로이 벤츠’(黒い ベンツ)라고 명명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안정된 일상이 정착되면서 사용이 가능한 물건을 버리는 일본, 풍요로움에 젖은 일본, 그것을 누리는 일본인이 부러워졌다. ‘역시 부자나라야! 부자 놈들이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였다. 잘만하면 먹고살고 유학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부픈 기대가 쓰레기장을 통해서 생겨났다. ‘니폰 반자이!(日本万歳), 니혼징 아리가토!(日本人 ありがとう), 도쿄 안녕!(東京おはいよう)’ 그동안 텔레비전을 통해서 배운 일본어로 일본과 일본인을 예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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