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절약하고 목표를 정비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여 쓴 이력서를 준비하고 이케부쿠로(池袋)를 향해 아르바이트 사냥에 나섰다. 따뜻한 햇살은 점포 입구에 붙어있는 모집 광고를 부드럽게 해 주었지만 그 순간 다시 망설임이라는 고질병이 돋았다. 마음이 흔들리면서 잠시나마 안정을 찾아주는 망설임에 의지했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예상한 답을 갖고 있었으나 이전 세븐일레븐 문을 등으로 밀고 들어갔듯이 이번에도 비겁하게 등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앞에 둔 채 급하게 인사를 하고 이력서를 내밀었다. 주인인 듯한 사람의 답을 듣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방금 구했습니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예상은 빗나갔고 준비한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다만 서로 ‘고맙습니다.’라고 매듭을 지은 것에 만족했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거절이었기에 희망적이었다. 멀리 사라지고 있는 거절의 여운과 망설임을 뒤로하고 모집 광고가 있는 다른 점포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주인의 답은 첫 번째 집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부드러웠지만 결코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두 번의 거절에 당황하여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과 차림새가 이상한지를 점검했다. 약간 긴장은 했지만 20대 후반의 검은 얼굴빛을 가진 건강한 청년이었다.
갸우뚱거리는 자신을 위로하며 심기일전하여 다시 도전했으나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물거품보다 약하게 깨지고 말았다. 당황하면서 점점 커진 절망감이 가슴속을 헤집었다.
모집 광고를 걸어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닌데 왜 같은 답이 돌아오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인가가 무엇인지를 직접 듣지 못했기에 궁금증은 미궁으로 빠졌고 의욕은 벼랑으로 떨어졌다.
야심 찬 계획이 빗나갔고, 독자생존 전략이 어그러졌다. 그동안 일본인과 쌓아온 좋은 감정이 탈색되었고,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간절하게 마지막 도전을 단행한 과정에서도 주인은 주저 없이 답을 주었다.
“미안합니다. 방금 구했습니다.”
똑같은 답변은 잠시 숨을 막히게 하였고, 현기증을 온몸에 돌게 하였다. 그 순간 입에서는 감정에 젖어 거칠어진 말이 튀어나왔다.
“개새끼야 아리가토!”
웃으면서 던진 말이 상대방의 얼굴에 꽂혔다.
“감사...”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대응을 했다.
말을 던지는 순간 속은 시원했으나 말끝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마음속에서는 ‘채용하지 않는 기분 나쁜 상황에 대한 불만이었고, 자신을 거부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쓴웃음’이라고 변명을 했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마음도 상했고 다리도 풀렸다. 건물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건설노동자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눈앞에서 너울거렸다. 또다시 생존과 사상연구라는 목표가 크게 흔들렸다. 잘 해결하지 못한 탓에 동일한 위기에 봉착했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방향을 잃었다. 이제 할 일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쿄를 떠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마지막 카드를 내서는 안된다.’는,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내가 선택한 도쿄의 잡초에서 타인이 선택한 도쿄의 이방인으로 신분이 바뀐 것 밖에 얻지 못했다. 그것이 신분상승인가 아니면 하락인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우선 일하고자 하는 나와 거절한 가게 주인 간에 있는 간극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거절하는 이유가 된 ‘방금 구했습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를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말에는 왜 거절했는지 되물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 말은 듣는 순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거절하는 이유가 “방금 구했습니다.”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가게들이 한결같이 그 말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는 ‘이방인이기에 벌어진 참사, 한국인이기에 벌어진 참사, 아니면 나라는 사람에 이기에 벌어진 참사, 일본 사회이기에 벌어진 참사’라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추측성 참사는 가슴을 뭉개놓았다. 거절의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타인의 궤도 위에 있는 자신이 무서워졌고, 타인으로 우뚝 서있는 도쿄와 일본인이 두려워졌다.
다른 한편으로 마음속에서는 대학 시절 일본인을 ‘쪽발이’라고 비아냥거렸던 대가를 일본에서 고스란히 받는 듯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내재화된 반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 대한 일본인의 거절 현상과 자신이 일본인을 비하한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동안 잘 길러 왔던 일본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한순간에 무뎌지고 있었다. 동시에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그것은 현실과의 타협도 아니었고, 살기 위한 비굴한 방향 전환도 아니었다. 새겨진 선입견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반성에서 온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거절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벌여온 ‘조센징(朝鮮人)과 쪽발이’라는 비하 게임은 결판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현장을 목격하는 듯해 슬프기도 했다. 그런 현상은 세대와 시대가 흘러가도 완벽하게 종식되지 않고 작동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모두 상처만을 안겨주는 순손실 비하 게임이 아르바이트 거절이라는 현실과는 연결되지 않았기를 바랐다.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고 싶을 때 꺼내는 비수로 사용되지 않기를 원했다.
‘일자리 구하기 참사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다시 일자리 구하기에 나섰다. 혼자의 힘으로 찾는 행위를 포기하고,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했다. 의외로 답은 즉각적으로 왔다. 일자리 찾기라는 터널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것이 뭐지?’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헷갈리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원점에서 돌아봐야 했기에 친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일자리를 구해줬어”
“지인에게 부탁을 했어.”
그 순간 ‘한일 간의 관계로 인하여 벌어진 참사, 자신이기에 벌어진 참사’라는 자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듯해 안심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일반적 처세술을 까맣게 잊고 의욕만 갖고 대들었던 것이 참사의 원인이기를 바랐다. 일본 사회에서도 일본인들이 작동시키고 있는 ‘룰’이 뿌리 깊게 통용되고 있는 것을 믿고 싶었다.
나를 크게 깨우치고 가르쳤던 한마디는 친구의 ‘지인’이라는 말이었다. 일본 사회에서 중시하는 것이 ‘지인’이라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지인’이라는 말에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원초적인 동기를 공유하고 관계를 확장하고 이어가는 ‘인연’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도쿄에서 살아남으려면 ‘인연’을 중시해야 한다는 새로운 일본적 정서를 배우게 되었다. 이제 겨우 일본에서 살아가는 법 중의 하나를 배웠다. ‘개새끼야 아리가토.’라고 말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주인은 사회에서 적응해 온 대로 대응했을 뿐이었고, 자기 문화와 정서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당분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신분으로부터 탈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친구의 소개로 신주쿠(新宿)에 있는 대형 야키니쿠야(焼き肉屋)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음식점에 들어서는 순간 도카이(東海)라는 간판이 한눈에 들어와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명칭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동해’라는 용어를 도쿄 심장부에서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기 때문이다.
나는 주방에 배치되었다. 주방을 관리하는 일본인 셰프(chef)는 매우 친절하고 간결한 사람이었다. 서빙을 하는 일본인, 그리고 생고기뿐 아니라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일본인 이타 멘(板マン)과 불판을 닦는 일본인 남성이 저녁 늦게 출근했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섞여 있어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얌전하게 보이는 ‘어머니’라고 불리는 아줌마의 존재였다. 가냘픈 몸매와 사근사근하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속속들이 사정을 살펴주는 섬세함도 있었다. 언행을 보면 오랫동안 일본 생활을 한 듯했다. 돌아가는 과정과 일 내용을 잘 알았고 주방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잘하건 잘못하건 타칭 어머니는 ‘이놈 새끼!’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본론을 이야기하는 욕쟁이였다. 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입국 신고를 할 때 들었던 ‘주방 아줌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주방 아줌마로 나는 전직 건설노동자로 조우한 셈이었다.
일자리를 허락한 사람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어머니는 제일 먼저 접시 닦기를 시켰다. 이 주일 정도 지나자 셰프는 레시피(recipe)가 기록된 큰 노트를 주며 다레(垂レ,양념) 만드는 일을 맡겼다. 일정한 비율에 따라 간장, 참기름, 설탕, 조미료, 과일 등으로 고기 양념간장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셰프는 비율과 만드는 과정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점검을 했기 때문에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그러나 색깔이 있는 지방 사투리를 쓰는 ‘어머니’는 나의 역할 변경에 뿔이 났다. 자기에게 말도 하지 않고, 일의 내용을 결정하는 근무서열을 무시하고 신참에게 식당의 맛을 결정하는 다레를 만들도록 맡겼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셰프의 눈치보다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것은 분명 어머니가 미워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오늘은 도카이의 회장님이 방문하는 날이라고 야단법석이었다. 회장님은 음식점 운영을 점검하고 직원을 격려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신입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과의 상견례를 중시한다고 했다. 나는 회장님에게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도쿄 심장부에서 ‘도카이’(東海)라는 글자를 당당하게 쓰고 있는 주인공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가 궁금했다.
회장님의 방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어머니는 소리를 쳤다.
“이놈 새끼! 혹시 모르니 일찍 출근해서 주방을 정리하고 다과를 준비해.”
“하이...”
회장님 방문 시간이 되면서 작은 공간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지만 나는 희열을 느꼈다.
이윽고 비서인 듯한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회장님이 등장했다. 얇은 셔츠 속으로 투명한 문신이 보였고, 눈빛은 칼처럼 사납게 파고들었다. 머리카락은 볶을 대로 볶아 라면처럼 겹겹이 얽혀있었다. 백바지와 백구두는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나와는 분명 다른 세계에 사는 범상치 않은 인물로 보였다.
“오모니(어머니)?”
“하이”
“이게 새로 온 아이인가?”
“하이”
어머니는 인사를 하라고 눈짓을 했다. 얼떨결에 인사했다. 회장님의 굵은 목소리는 현장과 나를 완전하게 제압했다.
“요로시쿠네(よろしくね)!”
“하이, 아리가토 고...”
악수를 한 손은 마치 쇠망치를 만지는 듯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회장님은 큰 체구를 움직이며 이곳저곳 들러보고 큰 산과 같은 등짝을 보이며 사라졌다. 회장님이 보인 등짝은 내가 망설임으로 보였던 비겁하고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도쿄 심장부에서 ‘동해’라는 간판을 사용하고 있는 회장님의 정체는 그 이후 수수께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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