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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 새하얀 가식

by 청사

전통적 일본여관에서 즐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거기에는 많은 돈을 들였다는 보상심리와 다시는 여기에서 사치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투명한 예측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타다미 방의 의자에 앉아 잠시 자연멍에 들어갔다. 계곡도, 나무도, 새도, 물도, 빛도, 그림자도, 바람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온통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휴가를 대체하는 온천과 디너(dinner)였다. 일본에서 얻은 우울함을 깊은 땅속에서 나오는 묵직한 온천수로 누르려했던 바람은 희망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렸다. 제거하려고 했던 기억이 이미 부서졌기 때문이다. 따듯한 기온으로 달아오른 기대와 감정을 더 달구고 싶었다.

눈으로 대면하고 있는 온천수를 향유하는 의식은 발가벗는 행위이어야 했다. 그것이 즐거움일까 아니면 부끄러움일까를 생각할 수 있는 망설임의 미학은 무의미했다. 세상이 관조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자신을 어떻게 희롱해서 망각할 것인가 하는 자족적인 의식만이 이 상황을 지배했다.

이윽고 손이 달린 듯 거친 옷들은 꺼풀을 풀고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았다. 신체와 온천수 사이에는 초면이라는 낯섦이 개입하면서 뻣뻣하게 서로 응시했다. 잘생긴 편백나무로 가둬진 미지의 온천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는 사랑방 손님이 되어 버렸다. 초조해진 가슴에서 가느다랗게 일어나는 붉은 동요가 잊어버린 초연을 소환했다.

얼떨결에 디딘 둔탁한 걸음질은 어느새 유리알 같은 온천수의 정적을 과도하게 깨뜨렸다. 몸체를 부드럽게 껴안는 물결은 풍성한 여인이 발하는 무수한 유형의 사랑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품어내는 입김은 몸집으로 생긴 빈틈을 파고들며 이내 무게를 잃은 천사가 되어 날아갔다.

하늘로 향하는 탱탱한 시선은 아무도 모르게 안갯속으로 떠나보내고 싶은 삶의 조각들이었다. 필요로 휘둘러온 칼 같은 이성이었고, 치열한 승부로 갈라진 승리이며 패배였고, 인간성을 잃은 상처받은 감성이었다. 거기에는 안착해 본 적이 없는 무중력의 세계에 뼈대 없이 빠지고 싶은 간절함이 있을 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편안함은 전신을 뜨겁게 녹이는 따듯함과 군더더기 이물질을 날려버리는 시원함이었다. 그 순간 온천수의 맑은 성질과 받아들이는 오감에는 균열이 없다는 깨달음을 심박수가 말하고 있었다. 빨라진 심박수에 맞춰 행진을 할 필요가 있었다.

온천수에서 얻은 행운은 웃음으로 자랑질했던 디너로 향했다. 사각으로 조성된 긴 식탁에 않자 세속의 깊은 세계로 진입하였다. 돈의 가치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의 가치가 삶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단순한 논리 한쪽 구석에는 낙천가의 기질이 포효하고 있었다.

이윽고 본격적인 쇼를 알리는 노련한 셰프의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가 귓가를 울렸다. 겉으로 풍기는 아우라에 심신은 마비되기 시작했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감탄사가 접시 위에서 꼬꾸라졌다. 그것은 먹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울림이었다.

식재가 맛으로 환생하고, 거품이 요리가 되고, 데코가 자연이 되고, 젓가락의 떨림이 춤이 되는 실연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눈초리를 붙잡아두는 화폭이었고, 코끝을 찌르는 향수였고, 입을 즐겁게 하는 노래였고, 가슴을 울리는 향연이었다. 식욕이 미각에 눌려도 억울하지 않은 탐미적 세계였다.

그 순간 객실에서 발견한 젊은 서예가의 작품 ‘취금찬옥(炊金饌玉)’이 떠올랐다. 당나라 낙빈왕(駱賓王)의 『제경편(帝京篇)』 ‘平臺戚裏帶崇墉,炊金饌玉待鳴鐘 평대와 척리는 높은 담장을 두르고, 황금으로 밥을 짓고 주옥으로 만든 반찬 종을 쳐 모여서 먹는다네)’에서 유래하였다. 취금찬옥(炊金饌玉)이 눈앞에서 써졌던 것이다.

쿠리야스이잔이 토해내는 미에는 우아하게 펼치는 멋과 세심하게 빚어내는 맛이 있었다. 일탈을 눈감아주고 탐욕을 삭히는 잔잔한 미소로 밝아진 마음에 더 이상의 호사는 의미가 없다는 새하얀 가식이 피어났다. 척박한 세속 어딘가에는 자라나는 미가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게재했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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