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야 스이잔(厨翠山)은 주방을 의미하는 주, 푸르름을 의미하는 취, 메를 의미하는 산 등으로 구성된 이름이었다. 의미를 되새기는 동안 그곳으로 가는 아담한 중형버스가 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두 사람이 안내했다. 전장에서 항복하는 모습이 아니라 차라리 행복을 부르는 두 송이의 하얀 백합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에 해당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베이비붐기에 태어난 세대를 의미한다. 이 시기에는 일본의 부흥과 경제성장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어린아이가 태어났다. 전쟁으로 사라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검은 달빛임에도 모두가 빠져 들어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단카이 세대는 인구 피라미드에서 인구가 많아 형성된 단층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설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라는 소설의 제목이 사회현상 용어로 확산되었다. 그들은 필요의 선처럼 당시 학교, 병원, 학교, 주택 등과 같은 사회시설의 확장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노동시장, 생산시장, 소비시장 등의 활성화를 통해서 경제발전을 견인한 성장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은퇴라는 새로운 세계에 양 떼처럼 무더기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제는 위로하고 성장을 했던 높은 존재에서 일시에 은퇴 연령이 되어 어둡게만 비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주범이 된 것이다. 애당초 생명을 얻는데 선택이 없었듯이 낮은 존재가 되는데 피할 길은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하얀 남자 천사가 쿠리야 스이잔으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안에 들어앉아 천정만을 보고 것을 마다하고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상황과 모습에 감동적인 울림이 찐하게 왔다. 나이가 들어하는 경제활동은 노동이 아니라 영양제이고, 시간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두툼하게 살찌우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슈트케이스를 들어 짐칸에 싣고 자리에 앉았다. 25개 정도의 자리가 있었고, 협소했다. 삼삼오오 여행객들은 가슴에서 키워온 희망의 짐짝을 안고 버스에 승차했다. 출발하기 전 인원을 파악하는 사람은 군인의 머릿수를 세듯이 5분마다 동일한 사람을 두고 앞에서 뒤로, 다시 뒤에서 앞으로 셈을 반복했다. 그들의 진지함과 열정적 책임이 돋보였다.
앞 좌석을 보니 딸과 부모인 듯한 가족이 앉아 한국말로 지연된 상황에 대해서 속삭였다. 바로 뒤에는 약간 만화주인공의 코스프레 냄새를 풍기는 젊은 일본 여성들이 앉아 출발지연과 관계없이 자신들만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젊음의 상큼한 향기가 어두운 버스 안을 뒤집어 놓았다.
그녀들은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가 잘못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 일본에 내재화되어 죽어라 자랑해 왔던 일본적 기업문화에 새롭게 움튼 꼰대와 MZ세대 간의 불협화음이 노출되었다. 그러나 거품이 티지 않았지만 열띤 토론은 자연스럽게 조직문화에 상처를 내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 왠지 흐뭇했다.
이야기 전개에 심취하는 동안 꼰대로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는 가운데 버스가 출발했다. 남쪽으로 달리는 동안 도로를 보니 ‘Made by Japan’ 아담한 소형차들이 주름을 잡았다. 매우 익숙한 장면이지만 새삼스럽게 일본인들의 알뜰 소비와 절약 정신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아름다운 배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길가에는 많은 세월을 보낸 듯한 라면집, 카레집, 초밥집, 자동차판매점, 편의점, 이발소 등이 눈을 스쳐갔다. 그런 모습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오래될 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가게, 마스터, 기술, 상품, 고객 등이 계승되고, 일본사회에 뿌리내린 장인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자 곧 이내 기다리던 님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처럼 목적지를 불러내고 있었다. 스이잔에 도착했자 젊은 스텝들이 백년손님이라도 왔다는 듯이 무릎을 꿇고 일본식으로 인사를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웰커밍 차, 포도주, 다과 등이 나왔다. 먹는 동안에 숙박계를 작성하고 일정에 대해서 친절하게 소개했다.
호텔 이름에 주방을 의미하는 쿠리야(厨)라는 말에 꽂혀 저녁 메뉴를 물었다. 스탭은 메뉴표를 가지고 온다고 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지역특산재료를 사용한 명품요리가 준비되어 있어 만족할 것이라고 웃으며 말을 했다. 그 자신감있는 웃음으로 빚어진 기대를 안고 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유카타(浴衣)를 입고 숨을 고르니 타타미(畳)를 통해서 일본의 향기가 한꺼번에 올라와 심신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