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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 초록불

by 청사

쿠리야스이잔에서 일본적인 미를 만끽한 다음 날 아침 유카타(浴衣)와 게타(下駄)를 신고 가족과 개인기념촬영을 위해 잘 조성된 정원으로 이동했다. 스마트폰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니 이제 젊지 않다고 말해도 불만을 제기하기엔 의미가 없다는 듯이 머리칼이 겸연쩍게 하얗게 인사를 했다.

아마도 이곳은 다시 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어제 자연 멍으로 대했던 그들과 조우했다. 삶은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동적인 경쟁에 젖어 있었지만 정적으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이 소곤소곤 사이좋게 살아가는 자연처럼 평화롭게 진행되기를 바랐다.

행복은 행복을 부른다는 말을 강하게 믿으며 삿포로 시내로 가기 위해 이별을 고했다. 셔틀버스에 올라 기록된 추억을 되새기며 새로운 오늘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삿포로시(札幌市)는 매우 잘 정돈된 도시처럼 보였다. 반듯한 건물과 바둑판과 같이 잘 그어진 도로, 깨끗한 거리와 노포의 고즈넉함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 속에 파묻히고 싶어 표시 내지 않게 움직이려고 했다. 유사 일본인으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도발됐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는 오래전 도쿄(東京) 생활에서 급하게 획득한 생존 일본어 사용으로 웃음을 사 졸지에 이방인이 되었던 기억이 작용한 듯했다.

두리번거리며 시내를 활보하니 예약한 S호텔로 향했다. 짐을 맡기고 시내 관광을 할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시트를 운반하는 외국인 여성이 있었다. 접수처 안내원은 영어로 안내를 했지만 의도적으로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외관으로는 국적이 판명되지 않았지만 일본어 발음을 들어보니 외국인이었다. 물어보니 대만인이라고 했다. 주위에 있는 커피숍에서도 동남아시아 출신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안내와 서빙을 했다.

이방인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외국인들이 일본호텔을 점령한 것은 아닐까? 호텔주인도 외국인이 아닐까라는 걱정과 안도감이 동시에 작용했다. 걱정은 일본이 일본인들에 의해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 차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안도감은 이방인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노동을 하며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다.

호텔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모두가 고대했던 스시(寿司)집으로 향했다. 홋카이도 시내에 있는 음식점은 예약이 필수라는 작은 아이의 추천으로 예약한 곳이었다. ‘활력이 있는 일품’이라는 상호를 가졌다. 문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과 의미 없는 눈 마주침을 이어갔다.

오고 가던 눈길과 발길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외국인처럼 보이는 점원의 안내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서는 외국인 점원을 보면서 걱정하기 것보다는 오히려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 마음 편하게 각자 선호하는 아카미(アカミ), 이카(イカ), 구르마에비(車えび)...... 속사포와 같이 연속적으로 주문을 했다.

더욱 놀란 상황은 요리사도 외국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상냥하게 웃으며 우선 3종류씩 시키면 좋겠다는 말로 폭발적인 주문량을 조절해 줬다. 그 말에는 일본인과 이방인이라는 구별이나 언어로 발생하는 불협화음도 없었다. 오로지 스시, 요리사, 고객 등이 존재할 뿐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만찬은 찬사로 시작됐다. 전통여관에서 획득한 미적 감각을 까맣게 잊고 본능적으로 먹었다. 한 톨 한 톨 살아있는 밥알, 숙성된 생선의 깊은 맛, 단맛과 짠맛의 조화 등이 입속에서 어우러져 또다시 환상적인 미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가끔 미식가처럼 작은 소리로 ‘우마이’(甘い : 맛있어)라고 속삭이면 됐다.

식사 후 체크인을 하고 방에 누우니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일본호텔과 스시집에서 외국인이 즐겁게 일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일본이 국제화된 것인지, 인력의 수급으로 생긴 경제효과인지, 일본 젊은이들이 회피하고 있는 3K(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 汚い, きつい, 危険) 직종 때문인지 등 원인분석에 몰두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상쾌했다.

그런 현상은 일본적 정서의 변화와 일본사회의 변화를 의미하고, 일본발전과 지역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외국인이 일하고 생활하고 여행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비일본의 일본화든, 일본의 비일본화든 상관없이 행복한 시그널이었다.

이번에 방문한 S호텔이나 스시집은 이방인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공존하는 공간이어서 좋았다. 같음이 같지 않아도 됐고, 다름이 달라도 되는 편안한 세상이었다. 일본이 해방공간을 열어 소우주를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분명히 거기에는 나와 네가 소통하는 초록불이 승리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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