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문화는 깊이 있는 진실의 거울이다. 인간적인 본능과 감성을 충동적으로 표현해도 용인된다는 점, 환하게 밝혀진 화음을 더욱 빛나게 하거나 어둠게 드리워진 불협화음을 어둠으로 지우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점, 포근하게 야한 밤에 울긋불긋한 자유성을 내깔기고 싶다는 점 등에서 밤문화는 순진한 아이가 토해내는 얼굴과도 같다.
우리는 편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니조시장(二条市場)에서 노포로 잘 알려진 이자카야(居酒屋)를 찾았다. 앱으로 찾는 작업에 능했기에 곧 발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시장은 넓었고, 꼬불꼬불한 길에 들어서면서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다. 있어야 할 곳에 없고 행방이 묘연해졌다. 스마트폰을 탓하며 앞뒤와 상하를 봤다. 체념하는 순간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조금만 불빛이 반짝였다.
미소를 머금고 4인이라고 말하자 싸늘하게 ‘자리가 없다’는 마스터의 쇠같은 소리에 들여놓았던 발을 급하게 빼는 상황이 됐다. 마스터는 대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자동응답기 같은 답변에 잠시 안을 들여다보니 빈자리가 있었다. 칼날 같았던 여운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마스터대신 빈자리를 꼬나보고 눈길을 회수했다.
언젠가 반복된 거절에 좌절했던 뼈아픈 상처가 다시 후벼지는 것 같았다. 국경이 낮아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여겼다. 거절과 용인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어서 어느 쪽을 내느냐는 그것을 가진 주체의 마음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그것들은 납득이 가야 하는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거절이라는 것도 분명히 악만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용인이라는 것도 반드시 선만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이자카야를 찾는 과정에서 생긴 거절은 분명 선이 아니라 악으로 비췄다. ‘빌어먹을 아직도 이 모양인가’라는 푸념은 이해하기보다는 불신의 씨앗으로 작용했다.
거절을 퍼부은 전통적인 니조시장을 버리고 호텔 주변에서 찾기 위해 급하게 마음과 발길을 옮겼다. 이자카야는 이곳저곳 많았기에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한 건물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층마다 있었기에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생겼다. 우선 위에서 아래로 찾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이자카야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말을 걸자 점원은 예약노트를 보여주며 ‘자리가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예약노트를 보여준 것은 거절하는 이유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절을 둘러싼 잡음을 사전에 없애고 이미지를 관리하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에 거절하면서 생겼던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과 다른 숨겨진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곁들여졌다.
거절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방법은 거절하지 않는 곳을 찾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곳을 가보기 위해 노크를 했다.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애타게 기다렸다. 점원은 돌아오더니 ‘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반가움보다는 안도감이 왔다. 이자카야에 들어가기를 용인해 준 이유는 ‘자리가 있다’는 상황이었다. ‘자리가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갑갑하기만 했다.
내 마음에는 여전히 ‘자리가 없다’는 말에는 자리가 있음에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없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리고 ‘ 자리가 있다’는 답변에는 외국인을 받고 싶지 않지만 매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일본에서 불신이 생긴 이유는 ‘자리가 없다 또는 자리가 있다’ 말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차별한 상황’을 숨기고 ‘자리가 없다 또는 자리가 있다’는 말로 진실을 호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쨌든 평범하게 이자카야에 들어갈 수 있는 현장을 아내와 딸들에게 보일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생맥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생맥주는 바로 나왔기에 안주도 금방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홀짝홀짝 술이 고팠는지 속도가 붙었다. 곧이어 바닥을 보이자 다시 주문을 했다. 두 번째 잔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안주는 나오지 않았다.
훌륭한 요리는 시간이 걸린다는 속설에 기대하며 기다렸다. 마침내 주문한 4개 요리 중 두 개가 나왔다. 닭튀김과 감자튀김이었다. 헐레벌떡 닭튀김과 감자튀김을 입에 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일본맛이라는 블랙홀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주방을 보니 머리가 하얗고 안경을 쓴 요리사가 손으로 인사를 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그룹도 맥주를 앞에 놓고 안주를 연속적으로 주문을 했지만 나오는 속도는 우리의 처지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느긋하게 이자카야의 밤문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비로소 그들과 평등하게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자카야에서 얻고 싶었던 밤문화의 편안함을 누리기에는 여전히 불안했다.
까도 까도 속이 나오는 양파와 같은 하루였다. 겉마음인지 속마음인지 알지 못했지만 분명한 답변에 희비가 교차하였다. 오늘은 이유에 대해서 따지지 않고 거절하면 물러났고, 망설이면 기다리며 눈치를 봤고, 용인하면 들어갔다. 상황을 마무리하는 순간 마음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사랑일까? 애증일까? 분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