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존재하는 그대로의 멋을 향유하는 데 가치가 있다. 도시는 쓰임새와 미적 감각에 의해 창조된 멋을 즐기는데 가치가 있다. 그것이 자연과 도시의 존재이유이다. 그러나 자연보다는 도시, 과거보다는 현재, 전통시장보다는 백화점, 보전보다는 발전 등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성에 대해서 격하게 지적질하는 모습에 젖어 살아온 것 같다. 하나의 현상이 함의하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찾기보다는 비판하여 고통받거나 상처를 내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물을 보는 시선이 감성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호텔에서 시작되는 아침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 있다. 그 덕분에 홋카이도의 사계와 꽃들로 어우러진 자연체의 속살을 더듬기 위한 일정에 돌입했다. 후라노 비에이투어(富良野&美瑛ツア)를 계획하며,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유여행에서 단체로 동행하는 일일패키지여행으로 전환했다.
삿포로시에 조성된 지하도시를 통해서 오도리 31번역 출구로 향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가이드의 이름을 쓴 깃발이 이곳저곳에서 여행객을 기다렸다. 이곳은 여행사에 예약한 관광객, 가이드, 관광버스 등이 조우하는 장소였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버스에 동승하니 자연투어가 시작됐다.
김 씨 성을 가진 한국 여성이 가이드했다. 옷차림이나 모습을 보니 일본인 풍의 패션과 냄새가 묻어있었다. 오늘은 감성을 충분히 살리고 대중 속에서 자유를 누리면서도 가이드에게 좋은 관광객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일정이 빈틈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랐다.
처음에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역방향으로 가는 관광길에 올랐다. 팜 코미타에서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고, 비에이역 작은 도시풍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나무와 화산수가 만들어낸 청의 연못과 흰 수염 폭포 등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했다.
이어서 홋카이도를 자연관광명소로 알린 마에다 신조(前田真三) 사진작가의 작품관을 갔다. 카메라가 찍은 사진은 원근법을 이용해서 자연이나 인물을 함축시켜 변함없이 재현하는 매력이 있었지만, 비경이 빚어내는 웅장함이나 살아있는 생생함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마에다 신조가 촬영하여 탁신관(拓真館)에 전시한 작품은 카메라 사진의 한계를 넘고 있는 것 같아 경이로웠다. 특히 비에의 언덕(美瑛の丘)에서 찍은 작품 중에서 「한 여름의 밀밭」(Wheat fields in summer, 1977)이 매혹적이었다.
파란 하늘과 노란 언덕과 빨간 꽃과 초록의 밀밭 등의 색채가 살아있고 웅장하게 버티고 있어 완전한 자연체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기, 사진작가, 감상하는 자신 등은 작품의 일부가 되어 따로 있지 않았다. 한참 빠져있을 때쯤 ‘아빠 맘에 들어?’라고 딸아이가 침묵을 깼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곳은 꽃들이 만발한 ‘사계 채의 언덕’이었다. 명소답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등이 난무하고 있었지만, 꽃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미소에 그들이 토해내는 감탄사는 차이가 없었다.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꽃잔치에 마음을 들이대고 웃으면 됐다.
먼 곳에 있는 꽃들의 기다림을 알았기에 트랙터를 탔다. 멀리 있는 꽃의 심정과 그것으로 가고 싶은 충동은 장거리 연인의 마음처럼 그렇게 일치하고 있었다. 트랙터를 타고 그곳을 향하던 중 갑자기 중간에 유턴해서 되돌아가려고 했다. ‘잠시만요. 저기까지 가야 되는데’라고 말하자 ‘멀어서 안 갑니다’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내렸다.
트랙터를 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멀리서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꽃들을 보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촉하는 발걸음에 꽃들이 가까워지면서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더 가까이 가야 하는지? 더 봐야 하는지? 등 망설임이라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도화지의 그림처럼 보였던 꽃들이 시들시들했고 격렬한 싸움으로 돌아앉은 이웃처럼 상처를 입고 듬성듬성 맥없이 있었다.
‘그때 트랙터를 타고 돌아갔더라면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기대는 희망을 부풀리고 희망은 성취해야 가치가 있다. 미의 대명사 꽃은 어쨌든 아름다워야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내 안에서 피기 시작한 감성은 지는 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데 미적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