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버는데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쓰는데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일까?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깊이 숙고를 해서 투자하는데 몰입한 적이 없었다. 동시에 돈을 통쾌하게 써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가끔 돈을 버는 데 재미를, 어느 때는 쓰는 데 희열을 느낀 적이 있었다.
돈은 있는 범위에서 사용할 때가 아니라 필요할 때 부족하거나 없어 쓰지 못할 때 소중함이나 절실함이 다가온다. 필요한 만큼 쓸 돈이 있으면 부유한 것이고, 필요한데도 쓰지 못하면 가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은 벌 때보다는 쓸 때가 존재가치를 더욱 크게 인식하는 것 같다.
여행 마지막 날은 돈 쓰기에 매우 좋은 날이었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마무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담아 온 물건의 품목을 머릿속으로 일부로 정리 안 하고, 먹거리 도전에 한계와 제한을 두지 않았다. 삿포로시의 골목골목을 샅샅이 뒤지는 가운데 주머니의 돈을 노리는 여러 상점에 유혹당해서 돈의 존재가치와 쓰임새를 증명해 볼 생각이었다.
삿포로시는 겨울이면 눈이 산더미처럼 쌓이다 녹다가 다시 얼어붙은 눈과 얼음과 추위가 하나가 되는 얼음 도시이다. 눈축제와 같은 색다른 풍경을 제공하지만,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한겨울 마비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건설된 지하광장은 도시 중심부를 관통해서 각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삿포로시 지하광장(札幌市 地下広場)은 2011년 3월 12일 오픈했다. 1년의 반은 눈으로 덮여있어 사계를 통해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도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각 지하철역과 호텔, 상점, 사무소, 빌딩, 도로 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음악회, 각종 이벤트, 예술품전시, 정보 발신, 판촉, 상품 PR 등을 하는 종합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지하광장에서는 삿포로시의 일상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사람과 상품을 연결하는 상점이 많았고, 고객과 상점을 연결하는 돈이 필요한 곳이었다. 돈독이 오른 상점 주인과 돈을 내어줄 준비하고 있는 내가 마주치는 사이에는 긴장감이 전혀 없어 좋았다.
눈길을 강하게 잡아당긴 것은 젊은 소녀 몇몇이 코스프레를 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최근 일본 청소년문화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메 주인공인 듯한 복장, 복잡하고 기괴한 화장, 네일아트, 피부색,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가방, 걸음걸이와 행동이 묘하게 어울렸다. 비행청소년같이 보였지만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확실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를 지였다.
지하광장을 빠져나와 향한 곳은 제국대학(帝国大学)으로 인재들을 흡수하고 있는 홋카이도 대학(北海道大学)이었다. 대학은 도시 한 복판에 있었고, 대학 간판은 화려하지 않지만 반듯하게 한자로 쓰여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가다 보니 큰 바위에 쓴 ‘큰 뜻을 품어라(大志を抱いて’라는 대학 슬로건이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웅장한 분위기와 거목들이 대학의 위엄을 대신했다. 잘 가꿔진 도로와 숲 속을 누비는 가운데 다양한 분위기와 교감을 했다. 숲 속에는 자연이 풍부한 곳이라는 사실이라도 느끼게 하려는 듯 시냇물이 대학의 생명처럼 흐르고 있었다.
견학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삿포로시 중앙도매시장(札幌市中央卸売市場)에 가는 전용버스를 탔다. 이곳도 쇼핑몰이나 온라인 구매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위축된 느낌을 받았다. 삿포로중앙시장과 시내 곳곳을 연결하는 전용 버스를 운영하여, 시장에 오고 싶은 사람이나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편의를 제공했다. 이제 상품시장은 고객이 알아서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상인이 고객을 찾아가는 시대가 됐다. 먹는데 돈의 제한을 두지 않고 주문했다.
이어서 눈처럼 도시를 덮고 있는 다누키코지 상점가(狸小路商店街)로 향했다. 삿포로시 한복판에 있고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어 있어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장 입구에는 너구리 캐릭터가 맞이했다. 선물용으로 홋카이도의 명물을 오로지 호불호에 근거해 선택해서 마음껏 샀다.
일본에 살았으면서도 어떤 감기약이 좋은지 모르다가 한국에서 코로나와 독감 유행으로 인해 약품이 귀해졌을 때 직구로 구매했던 감기약과 연고, 파스 등을 샀다. 상점마다 면세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공항면세점을 이용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저녁에는 일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서 예약한 구루만즈 이토(グルマンズ いとう) 야키니쿠에 갔다. 그곳에는 키모노(着物)를 입은 일본인 직원들이 안내했다. 한국풍의 음식점에서 키모노를 입은 모습이 친밀감을 더해줬다. 한국음식과 키모노가 어울리는 현상을 보면서 ‘자리가 있다 또는 자리가 없다’는 답변에 휘둘릴 필요도 없었다.
호텔로 향하는 길에 저녁 파티를 위해서 꼬치점을 들렀다. 돈을 쓸 준비를 하고 있는 속마음을 읽고 있는 듯이 메뉴판을 들고 열변을 토했다. 이어서 만둣집을 찾아 만두를 샀다. 홋카이도하면 유바리멜론(夕張メロン)이었지만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보거나 먹지를 못했다. 호텔이 제공한 프로모션 코인으로 유바리멜론을 모두 시키자 점원으로부터 크레임이 왔다. 양이 제한되어 있어 개인당 4분의 1 정도밖에 주문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유바리멜론 사냥은 제지를 당했지만 불만은 조금도 없었다.
오늘은 돈을 쓸 만큼 썼고 필요한 만큼 부족함 없이 썼다. 여행이라는 기분에 푹 젖어 사고 싶은 물건을 샀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고, 가고 싶은 곳에 갔기에 큰 부자로 있었다. 젊은 시절 돈은 내일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서 과감하게 역주행했다. 돈은 오늘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