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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 홍콩의 달빛

by 청사

꿈의 도시는 있는가?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고, 지나친 사치가 난무해도 어울리는 곳이었다. 배우 이소룡과 성룡에 의해 특화된 무술영화, 동서양을 넘나드는 선진국형 문화의 발상지이며, 세계의 금융허브로서 각인되는 등 명성과 화려함이 가득한 명품도시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기획해서 진짜 홍콩에 가니 ‘홍콩’에 가볼 생각이었다. 매스미디어나 소문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정체를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중국과는 다른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실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인천공항에서 설렘을 갖고 첵랍콕 국제공항(香港國際空港 赤鱲角)으로 향했다. 공항 이름이 낯설었고 발음하기도 어려웠지만 불편한 카이탁 국제공항의 대체공항이며 바다로 둘러싸인 첵랍콕섬에 세워진 해상공항이라는 사실보다는 홍콩공항이라는데 호기심이 갔다.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Lord Norman Foster)이 설계한 최첨단 건축물로, 1998년 <건설산업제조업협회>에 의해 20세기 10대 건설 업적 중 하나로 선정됐다. 첵랍콕 공항은 고속도로, 철도, 대교의 연결을 통해 도시의 여러 지역과 연결되어 편리함을 도모한 곳으로 알려졌다.

곧 도착할 것이라는 기내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가득했던 호기심은 하늘로부터 낮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을 향해 룰러코스트처럼 질주했다. 형형색색의 특색 있는 조각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였고, 바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아름다웠기에 시선을 빼앗기는 상황이 오히려 감사할 뿐이었다.

이번 여행은 ‘가성비가 좋고 화려하게’라는 콘셉트였다. ‘가성비가 좋고 화려하게’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홍콩에 내재된 매력을 가장 값싸게 맛볼 생각이었다. 틀림없이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흠뻑 담을 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 확신했다.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입국심사를 받은 후 기분 좋게 수하물 찾는 곳(Baggage reclaim)으로 향했다.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 도착하니 이미 홍콩이 발하는 흥미 있는 현상들이 눈과 코를 자극했다. 이것은 분명히 좋은 신호이고 계속해서 간직하고 싶은 초연과 같은 유혹이라고 여겨 기쁘게 맞이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는 아이들의 짐을 내뱉고는 다시 돌고 돌았다. 맘먹고 샀던 피에르 가르댕 슈트케이스가 멀리서 명품답게 기우뚱거리고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옳거니 하고 번쩍 들어 바닥에 놓은 순간 이상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슈트케이스 한구석이 깨져 내용물이 보였다.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슈트케이스 구석이 찌그러져 받은 상처가 다시 떠올랐다. 찌그러지고 깨진 가방이 처참하고 불 품 없이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임시방편으로 봉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난감하였지만 원망하기보다는 사태수습을 위해 공항관계자에게 변상을 받기 위해 움직였다.

공항관계자에 상황을 보여주고 변상을 요구하자 보험증을 보자는 것이었다. 보험을 들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변상을 해 줄 수 없다는 싸늘한 대답만이 왔다. 그 순간 깨진 슈트케이스가 큰 상처처럼 아려왔고, 사치스럽고 도도하게 나와야 할 관문에서 막히며 기대가 마구 흔들렸다.

여행하면서 항상 따라다니는 리스크에 매몰되면, 분위기를 망칠 것이라는 패배주의적 사고에 의지하여 망설이지 않고 빨리 잊으려 했다. 내면에 생긴 불협화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당장 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깨진 슈트케이스, 패배를 숨기려는 간사함, 거친 마음이 엇박자 발길을 재촉했다.

공항에서 생긴 불상사에 사로잡혀 꿈속의 도시는 공중분해되는 듯했다. ‘가성비가 좋고 화려하게’라는 콘셉트는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하며, ‘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변질된 도전에 직면했다. 유심칩과 교통카드를 산후 짐 보관장소를 찾아 맡기고 한낮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홍콩의 달빛을 찾으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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