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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 메뚜기와 당나귀

by 청사

인생은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 중에서 살아가는 길고 긴 여정이다. 지금까지 홍콩에서의 경험은 유쾌한 것보다는 불쾌한 것이 많은 여정이었다. 그래도 불안전함은 완전함으로 가기 위한 통과역이라고 여기고 연속되는 불신감을 잠재우기 위해 움직였다.

홍콩의 진수가 응축된 침사추이(Tsim Sha Tsui 尖沙咀)로 가기 위해서 홍콩섬과 가우롱반도(九龍半島)를 해저터널로 관통하는 지하철을 찾았다. 홍콩철도 유한공사(MTR)가 운영하는 췬완선(Tsuen Wan Line, 荃灣綫)은 홍콩섬 센트럴역(中環站)에서 가우롱반도의 췬완역(荃灣站) 구간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복(福)을 의미하는 적색이었다.

가우롱(九龍)은 반도에 솟아오른 9개의 산봉우리를 지칭하며 중국대륙과 연결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송의 마지막 황제 소제(少帝)가 몽골의 쿠빌라이 칸으로부터, 그리고 명나라 멸망한 후 한족들이 만주족을 피해 은신한 곳이다. 근대화과정에서는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영국이 청나라로부터 이양받은 곳이다. 역사적으로 절망과 희망을 담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인 가우롱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침사추이는 홍콩섬의 센트럴과 함께 홍콩 양대 번화가이다. 마천루 숲인 홍콩섬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고, 서구문화와 동양문화가 혼재되고 있으며, 빈자와 부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유명한 쇼핑센터, 레스토랑, 호텔, 야시장, 한식당과 한국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형성된 코리아타운, 빅토리아 항구, 페리 선착장, 시계탑, 홍콩 최대 명품 쇼핑센터인 하버시티(海港城, Harbour City), 홍콩우주박물관(香港太空), 홀리데이 인 골든마일(Holiday In Golden Mile)호텔, 홍콩금상장 영화상이 주로 열리는 홍콩문화센터, 스타의 거리 등이 있어 매력이 넘치는 여행의 필수 코스였다.

침사추이 역에 도착하여 숙고를 찾아 나섰다. 쉽게 찾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좀처럼 찾지 못했다. 주소로는 그 건물이어야 하는데 호텔은 온 데 간데없었다. 찾다 찾다 할 수 없이 현지인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물었다. 현지인도 찾는데 실패를 했다. 사라진 호텔이거나 공중에 떠있는 듯했다. 할 수 없이 주소 건물 안에 들어가 푯말을 보니 아주 작은 글씨로 산두 게스트 하우스(Sandhu Guest House)라고 적혀 있었다.

호텔로 착각한 산두게스트 하우스는 침사추이 중심에 있고 유명한 장소로 가는데 최적화된 곳이라 선택을 했던 것이다. MTR 췬완선 침사추이역에서 도보 2분, 홍콩국제공항으로부터 30분, 쇼핑을 즐기기 좋은 하버시티가 도보 5분, 빅토리아항이 도보 10분, 홍콩 최대의 재래시장인 레이디스 마켓이 10분, 1881 헤리티지, 아이스퀘어에서 도보 6분 이내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호텔보다 저렴했고, 사진으로 본 방안은 매우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예약을 했다. 이곳은 게스트하우스(Sandhu Guest House)로 호텔로 치면 2성급의 서민적이고 가성비가 있는 숙소였다. 힘겹게 올라가자 인도/파키스탄계처럼 보이는 인포메이션 남자는 반갑게 맞이하며 짐을 들어 방까지 안내를 했다. 점원이 아니라 주인인듯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생존력에 찬사를 보냈다.

방안이 좁아 물어보니 예약한 4인실이 맞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불신이 들기 시작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려봐도 온통 아는 가족의 얼굴만이 시야에 들어왔고, 눈을 놓을 데가 없었다. 슈트케이스를 놓을 만한 공간이 나지 않아 침대 밑과 옆에 겹겹이 쌓아 올렸다. 더블 침대는 돌아누울 수 없는 정도로 협소했고, 샤워장과 화장실은 몸뚱이를 겨우 돌릴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사방이 막혀있어 창문 틈으로 보니 사각 공간으로 이루어진 허름하고 거대한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었고, 아파트 벽에는 매미 떼처럼 붙은 있는 듯한 엄청난 숫자의 실외기가 뜨거운 여름처럼 숨을 멎게 했다. 알고 보니 이곳 주위에는 서민층이 거주하는 충칭 맨션(重慶大厦)과 미라도 맨션(美麗都大厦)이 있는 곳이었다. 왕가위 감독의 멜로 영화 <중칭삼람>(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1994)의 주요 배경이 되어 잘 알려진 곳이었다.

숙고를 선택하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그리고 답답함을 풀기 위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는 유명한 곳을 보기 위해 이동을 했다. 거리에는 많은 인종의 사람, 목소리, 상점, 습한 기운이 서로 엉켜 도시를 모자이크하고 있었다. 거리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걸어가는 사이로 어설프지만 크고 탱탱한 소리가 날아와 귓가에 박혔다.

한 청년이 딸을 향해 ‘언니 커시 롤렉스’라고 하였다. 커시(可惜)는 ‘아슬아슬하게 뭔가를 놓쳐서 안타깝다’는 의미였다. 더욱이 노골적으로 유창하게 ‘가짜시계, 가짜시계, 롤렉스, 똑같아요’라고 다시 말을 했다. 어이없어 웃고 있는데 얼굴이 마주치자 따라오면서 말을 걸고 시계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호객꾼을 향해 ‘No thanks’라고 했지만 반복되는 언행에 무시해 버렸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빅토리아항(Victoria Harbour, 維多利亞港)에 도착을 하는 과정에서 침사추이만의 독특한 향기가 바닷바람과 함께 사정없이 불어왔다. 홍콩의 가우룽반도와 홍콩섬 사이에 위치한 빅토리아항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밴쿠버 하버, 시드니 하버 등과 함께 세계 삼대 천연항 중 하나이며 야경을 뽐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로 인해 홍콩은 동방의 진주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바닷바람과 함께 산책을 하고 길거리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름다운 색깔과 디자인으로 빅토리아항을 눈부시게 하는 레이저와 사운드 쇼로 알려진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hony of Lights)를 구경하기 위해 스타의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옹기종기 앉아 기다리는 마음은 역시 여행에서나 맛볼 수 있는 행복이었다.

홍콩섬과 가오롱반도의 45개 주요 건물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쇼는 홍콩의 탄생과 성장, 활기찬 에너지, 다채로운 유산과 풍부한 문화적 전통, 홍콩섬과 가우롱반도의 파트너십 등을 레이저와 섬광 등 빛의 에너지로 형상화했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관람을 마치고, 화려한 하버시티 쇼핑몰에 도착했다. 유명한 상품 브랜드가 즐비했다. 아이쇼핑을 하면서 공항에서 부서진 슈트케이스를 새로 구입하기 위해 상점을 찾았다. 이번에는 단단한 재질보다는 유연한 재질, 비싼 것보다는 싼 것,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 등에 초점을 두었지만 그런 제품은 거기에 없었다.

하버시티를 뒤로하고 길거리로 나섰다. 서민티가 팍팍 나는 상점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슈트케이스를 파는 곳이 눈에 들어오면서 더욱 정이 갔다.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했지만 나의 시선과 길거리 상점은 하나의 선상에 있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메뚜기는 높이 날아도 잠자리가 되지 못하고, 당나귀는 아무리 잘 달려도 말이 되지 못한다.

땀 냄새, 가짜 롤렉스, 다문화, 서민 등 소박함이 넘치는 침사추이와 세련됨, 사치, 명품, 부유층, 멋 등 화려함이 진동하는 침사추이가 공존했다. 그러나 2성급 호텔 예약과 길거리 상점 슈트케이스 구매는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는 나의 성분을 사정없이 찢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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