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에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탐이 난다. 정면에 있는 것은 손이 닿을 것 같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내 손에 있는 것도 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고, 타인의 손에 있는 것은 더더욱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을 내어 가지려 한다면 자신을 태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도 화려함이라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반대편에 있는 홍콩섬에서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보다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 더욱 멋지게 보였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안심을 했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다시 딸들을 보며 ‘커시 로렉스, 가짜 로렉스’라는 말이 날아들었다.
아주 작은 틈새로 그들이 다시 파고들었다. ‘어떻게 알고 말을 걸지, 오랜 학습으로 한국 여성의 머리, 화장, 옷, 생김새 등이 그들의 눈에 새겨진 것이겠지. 스타일을 읽을 수 있는 천리안이 생긴 거야’라고 딸이 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 ‘한국 사람은 가짜를 좋아하나?’라고 실소를 하면서도 ‘그들은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라고 칭송을 했다.
홍콩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같은 바다를 건너가야 했다. 스타 페리(天星小輪, Star Ferry)를 보는 순간 낭만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안전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통통선 같은 소음과 속도로 바다를 가르는 모습은 마치 헤어지자는 말에 너덜너덜해진 물거품의 사랑을 싣고 가는 것처럼 초라했다.
홍콩섬은 1842년 난징조약으로 가장 먼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혜택인지 해악인지 그 덕분에 현대 도시의 발상지가 되었고, 정치, 경제, 쇼핑몰, 상업 건물 등 마천루가 탄생했다. 홍콩 심장과 성장의 표상이기도 했기에 내가 원하던 ‘화려함’을 맛볼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좁은 평지 위에 마천루가 형성됐고 동시에 산악지형이 잘 개발되었다. 더운 바닷바람이 불고 후덥지근해서 예부터 식민지 지배를 했던 영국인이나 부자들은 시원한 고지대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산악지형에 알맞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피크트램(Peak Tram) 등과 같은 교통수단이 발달하였다.
센트럴 선착장에 도착해서 화려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IFC몰(International Finance Centre Mall)에 입성했다. IFC몰은 그 규모와 유명세에 힘입어 홍콩을 대표하는 쇼핑몰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1975년 스페인에서 설립되어 아시아에 최초로 입점한 ZARA에 들렀다.
ZARA는 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신발과 가방, 액세서리 등의 제품을 판매했다. 한국에서 세탁소에 맡기지 않고 직접 손으로 빻은 신발이 다 마르지 않아 지독한 냄새가 났기에 새 신발이 필요했다. ZARA에 들어서니 구두와 운동화 중간형의 하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신어보려고 하는 순간 발에 스며든 냄새가 심해서 새 제품을 신어볼 수가 없었다.
시도하는 순간 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디자인이 맘에 들었기에 눈으로 가늠질을 하고 크기의 숫자를 확인해 봤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이즈에 몰입되어 가격에 대한 고민을 잊고 있었다. 가방 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발을 싸고 급하게 신어봤다.
발은 들어갔지만 약간 작은 감이 있었다. 강한 재질로 되어 있어 탄력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신발을 사야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하는 망설임은 죄가 될 뿐이라는 불편한 판단이 있었다. 이미 냄새로 찜한 신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과분한 가격을 지불하고 신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화려함은 현실에서 과한 욕심만큼 돈으로 지불하면 되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홍콩섬을 돌기 위해서 BIG BUS 레드라인에 타 Hop-On Hop-Off 관광 투어에 올랐다. 홍콩섬에 조성된 마천루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흔적을 내고 피크트랩을 경험해 볼 계획이었다. 빅버스 2층 멘 뒤에 앉아 기립하지 말라(不准企立)라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끔 일어나 무더운 기운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빅버스는 이리저리 곡목을 헤집고 다녔지만 스릴이나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천루는 말 그대로 높고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건물이었을 뿐이다. 더욱이 버스속도에 의지하는 만큼 보는 것, 지나가는 것, 잊는 것 모두 버스속도에 맞춰져 머리에 남지 않았다.
홍콩섬의 최종목적은 피크트램(Peak Tram)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가서 홍콩의 전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피크트램은 1888년 피크에서 센트럴을 연결하는 아시아 최초의 강삭철도(Funicular)이고, 해발 28미터부터 396미터까지, 43도의 가파른 경사, 1.27킬로미터, 약 10분간 소요되었다.
일본 하코네(箱根)와 스위스에서 산악열차를 타봤기에 그렇게 신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좌석선택은 운에 맡기는 것 이외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탑승하자 곧바로 경사길로 진입했다. 40도가 넘는 경사에 뒤로 젖혀지는 몸은 누군가에게 기대하려는 의지론으로 달려갔지만 버티려는 역작용으로 많은 힘이 들어갔다.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에 오르니 웅장한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홍콩섬, 파란빛을 수놓은 빅토리아 하버(Victoria Harbour), 오밀조밀 사이좋게 모여있는 가우롱반도 등은 이복형제처럼 엉켜있었다. 부자도 빈자도, 가짜 로렉스도 진짜 로렉스도, 하버시티도 거리상점도, 홍콩인도 비홍콩인도 모두 홍콩의 빛으로 있었다.
홍콩의 빛을 앞에 두고 마음속에 살아가는 욕망이 누추해졌다. 자신이 발하는 것을 보지 않고 더욱 뜨거운 광도를 찾아 상처가 나고 있었다. 마치 멀리 있으면 돌진하고, 가까이 있으면 날려 타버리는 불나방의 불꽃 사랑이었다. 홍콩에서 맛보고 있는 화려함은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 내안의 유혹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