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Weber)는 계층적 관점에서 사회를 상층, 중층, 하층 등으로 구분했다. 파레토(Preto)는 엘리트의 관점에서 사회를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구분했다. 그들 중 ‘사회의 중심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이 시대는 ‘얼굴이 보이는 대중’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나는 얼굴이 보이는 대중에 속할까?
학술적 목적이든 여행목적이든 외국에 가면 그 나라에서 생산된 창작품을 하나 가지고 오는 것과 방문지의 대학을 가보는 것이었다. 이번 홍콩여행에서는 만물상이 있는 몽콕(旺角)에서 찾아볼 생각이었다. 로렉스 시계도 아니고 문학작품도 아니고 일류명품도 아니다. 마음에 드는 창작품을 하나 안고 오는 것이다.
미로로 구축된 몽콕 야경을 구경하면서 사냥감을 노렸다. 의류와 장식품으로 뒤덮인 레이디스 마켓, 식물과 꽃으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플라워 마켓, 스포츠 판매점의 파윈 스트리트, 그리고 눈여겨보고 있는 골동품, 점술가, 음식점 등 거리의 종합선물센터 템플 스트리트가 있었다.
몽콕은 환희와 열정의 미가 응축되어 흐르는 작은 홍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먹거리, 볼거리, 들을 거리 등이 망나니의 칼춤에 맞서는 무죄한 수형자의 살고자 하는 생욕(生慾)처럼 물욕을 요동치게 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크고 작은 염원을 저렴하고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소망의 거리라고 인식되었다.
딸들이 노리고 있는 레이디스 마켓(Ladies' Market)에 들어섰다. 상품을 보면서도 홍콩이라는 언어에 묻어있는 현실감각 ‘바가지, 가짜, 흥정’이 마음속에서 숨 쉬고 있었지만 내뱉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액세서리의 진위와 가격에 그냥 그대로 순응하는 인심 좋은 날로 기록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눈독을 들이고 있는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廟角, Temple Street Night Market)으로 향했다. 몸짓을 고동치게 하는 음악소리, 점점 마음을 흔들고 있는 야시장의 물결, 발길을 멈추게 하고 눈을 잡아놓는 노점상의 유혹 등이 전신을 포로로 만들었다.
노점상과 상품들이 부르는 소리가 세차게 들렸지만 오로지 창작품 상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딸들의 발걸음과 맞춘 보조가 균형을 잃기 시작하면서 이탈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작은 아이의 ‘아빠 무엇에 그렇게 홀렸어?’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내 마음은 더 부풀었다.
골동품 상점에는 관록이 있는 조각품, 예술품, 가공품 등이 있었지만 갖고 싶은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노점들을 무시하고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봤다. 유난히 요란스럽고 강렬하게 불빛을 발하는 노점상이 있었다. 급하게 다가가니 드로잉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작품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을 들러보고 쌓아놓은 미술품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어떤 작품을 고를 것인가에 대한 결심도 없는 상태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보는 가운데 어느 작가가 그렸는지보다는 ‘마음에 드는’이라는 아주 단순한 기준이 생겼다. 한참을 뒤적이다 보니 쌓여있는 작품이 얇아지면서 초초함은 더해졌다.
쌓여있던 미술품이 거덜 나면서 쌓여가던 기대감도 거덜 나고 말았다. 절망으로 떨어지는 순간 눈을 반짝이게 하는 작품이 들어왔다. 마치 유명 화가의 작풍을 느끼게 하듯이 강렬한 힘으로 다가왔다. ‘이거다’라고 소리를 쳤다. 상점 주인과 눈이 묘하게 마주쳤다. 사랑하는 눈빛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그림과 가격이 충돌하는 불꽃이었다.
생존 중국어로 가격을 물었다. 좀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다시 영어로 물어봤다. 500 홍콩달러라고 말을 했다. 작품을 앞에 두고 홍콩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흥정’이라는 거래법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300달러’라고 크게 외쳤다. 고개를 흔들고 있어 50달러를 올려주고 뺏듯이 둘둘 말아 손에 쥐었다. 물욕에 인심 좋은 날은 망가지고 말았다.
잠시 포획물을 보니 다양한 각을 가진 모형이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도 강렬한 원색으로 치장함과 동시에 요철의 입체감이 돋보이며 수학적 영감을 가진 여인이 냉정하게 새 주인을 보고 있었다. 홍콩에서 얻을 수 있는 최애(最愛)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작가 이름과 제목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
그 순간 제목을 지어줄 수 기회가 온 것에 희열을 느꼈다. 불빛에 비춰, 피카소의 그림을 닮은 듯하여 피카소 여인, 다양한 모형으로 구성되었기에 각을 가진 여인, 은은한 빛과 차가운 열정을 발하고 있는 듯하여 달빛 여인, 몽콕의 정체성과 미를 대변하는 듯하여 몽콕 여인 등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템플 스트리트에서 맛집 사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