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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 완전한 자유

by 청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작가 장 드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의 〈우화〉(Fables)에 맨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로마에서 목적지까지 마차 길을 뚫었다는 의미와 다른 곳으로 가든 오든 로마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대제국 로마의 위용을 일컫는 말이다.

다른 의미로는 ‘동일한 목적지를 도착하는 데는 많은 길이 있다, 동일한 결과를 낳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어떤 목적에 도달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나 수단이 있다, 다양한 방법이나 수단을 사용한다 해도 도달하는 목적은 동일하다’ 등을 함의하고 있다.

드디어 거대하고 장엄했던 로마에 발을 디뎠다. 처음 접한 곳은 허술해 기울어질 것 같은 콜로세움(Colosseum, Colosseo)이었다. 상처 조각이 붙고 떨어지는 험악한 피부를 가진 외로운 거인이었다. 오래전 검투사가 울부짖었던 생사의 울음과 살집이 벽을 뚫고 뛰쳐나오는 듯했다. 새파란 웃음이 새빨간 절규를 흡수하는 암울함이었다.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 제10대 티투수(Titus) 황제가 타원형의 건축물로 완성하여 경기장으로 사용했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Flavius) 원형 경기장이었다. 현재 명칭은 로마 제5대 네로(Nero) 황제의 거상(巨像)을 의미하는 콜로서스(colossus)에서 유래했다.

여기에서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 동물과 죄수 간의 혈투, 동물 사냥, 신화 재연 등 다양한 행사나 공연이 펼쳐졌다. 가장 인기 있었던 공연은 동물 사냥이었다. 원로원이 ‘최고의 통치자’(optimus princeps)라고 칭송한 제13대 트라야누스(Traianus) 황제는 다키아(Dacia, 현재 루마니아)를 정복한 승전 행사를 하면서 만여 마리의 동물과 만여 명의 검투사를 희생시켰다고 전한다.

검투사들은 노예나 전쟁 포로 중에서 운동 능력이 탁월하고 용맹하게 싸우는 자들이 선발되었다. 그들은 서로 결투를 벌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사냥하는 광경을 보여 로마 지배자와 관중들을 광분 속으로 몰아넣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검투사들은 복종과 결투하면서도 내면에서 자라나는 자유의 날을 갈구하며 생사의 순간을 살았다.

콜로세움이 가까워지면서 리들리 스콧(Sir Ridley Scot) 감독이 연출하고 라셀 크로우(Russell Crowe) 배우가 주연한 <글레디에이터>(Gladiator, 2000년)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검투사 막시무스의 불타는 눈빛과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의 포효가 충돌하는 아찔한 광경이 떠올랐다. 진한 핏자국이 적시듯이 리사 제라드(Lisa Gerrard, Enya)가 부른 주제곡 <Now We Are Free>가 흘렀다.


“완전한 자유여..영혼의 완전한 자유여..자유를 얻기 위해 나와 함께 금빛 벌판을 향하여 걷자. ......... 사랑스럽구나 이 땅은 사랑스러워..그 누구도 믿거나 이해할 수 없겠지..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얼마나 먼 곳에서 왔는지를..세상이 무너질때까지..가족들과 함께 난 이곳에 있어야 했어...........하지만 이제 그들과 같이 쉴 수 있어.. 절대 잊지 않겠어..이 순간의 내 감정을..그렇게 난 자유를 얻었어..”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에는 빛과 그림자를 빨아들인 이탈리아의 검푸른 우산 소나무가 먼 산을 바라보며 엉성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거칠고 험한 발길로 닳은 산 피트리니(San pietrini)라는 자갈돌 길바닥이 옹기종기 앉아 당시의 영광과 상처를 보듬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 로마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꿈의 여행지로 생각했던 유럽여행을 시작하며 첫 방문지로 가볍게 들어선 로마에서 온몸이 전율에 휩싸이며 닭살이 돋는 상황에 직면했다. 역사를 숨기지 않고 재현하고 있는 이곳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모든 빛과 그림자는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로 되돌아왔다.

로마는 역사이고 현재이며, 야만이고 문명이며, 생이고 사이며, 무덤이며 삶이었다. 그런 다양한 무게로 돌진해 온 로마는 표현이 복잡한 감성과 형용할 수 없는 난해한 생각에 빠지게 했다. 자랑스러운 빛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가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생의 반대편에 있는 사는 삶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것은 소생되거나 회생되거나 돌아올 수가 없다. 사의 반대편에 있는 생은 연습이 없고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 엄중하기에 일생에 딱 한 번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사에 하얀 마음이 피어날 때 완전한 자유를 얻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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