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행운이 필요하다. 불로소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가운데 0.01%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불어주는 우호적인 산들바람과 같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바람을 느꼈거나 실제로 경험한 사람은 분명 행운아다. 오늘은 혼자만이 바라고 있는 그런 행운을 빌어볼 생각이다.
많은 관객들이 존재를 거대하게 만들고 있는 ‘세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약속의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에 도착했다. 1732년 이탈리아 건축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가 설계하고, 1762년 이탈리아 조각가 피에트로 브라치(Pietro Bracci)가 완성한 바로크 양식의 분수로 로마에서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 나오는 ‘달라란 분수대’와 인기가 있던 일본 후지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트리비아의 샘> 세트장에 설치된 분수도 그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또한 <철권 태그 토너먼트 2>의 무대도 트레비 분수를 배경으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분수에 얽힌 아름답고 즐거운 사연 때문이다. 등을 돌린 채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너머 동전 한 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개의 동전을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의 동전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전설이 남녀노소를 설레게 해 왔다.
트레비 분수의 전설의 효능과 실현과는 관계없이 즐겁게 보고 전설에 따라 행동하면 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담아 트레비 분수로 떨어트리는 동전을 보면서 내 소원도 동시에 빌었다. 마치 행운을 빌어먹는 꼴이 됐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순간 차를 이용해 와이프가 왼손으로 동전을 오른쪽 어깨너머로 던졌다. 어떤 의미였을까?
트레비 분수와 잘 어울리는 것이 이탈리아 전통 아이스크림 젤라토(Gelato)였다. 원조라고 평판이 있는 젤라떼리아 앞에는 이미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소원을 말했으니 이제 속 시원하게 뚫어줄 아이스크림까지 손에 쥐면 운수대통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기다림은 기쁨으로 느껴졌다.
젤라토는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아이스크림으로 ‘얼었다’라는 의미이다. 과즙, 과육, 우유, 설탕, 커피, 향초 등을 배합해서 얼린 것이다. 철학자 볼테르(Voltaire)가 ‘그렇게 이름 하나만 가지고 권력을 유지한 가문은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메디치(Medici) 대공의 궁정에서 젤라토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2003년 이탈리아 명물로 정착되어 볼로냐에 젤라토 제조 기술자 양성을 위해 젤라토 대학(Gelato University)을 설립했다.
주문한 암브로시아(Ambrosia) 젤라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음식’을 뜻했고, 바닐라, 초콜릿, 치즈가 어우러져 입안을 향기롭게 했다. 그리고 판나코타(Panna Cotta) 젤라토는 ‘요리한 크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크림, 우유, 젤라틴 등으로 만들어져 입안에 닿는 순간 사랑의 연가처럼 달콤했다.
젤라토가 주는 사랑의 맛을 갖고 판테온(Pantheon) 신전으로 향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만신전’으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판테온 신전의 정면에는 라틴어 ‘M · AGRIPPA · L · F· COS · TERTIVM · FECIT’(Mārcus Agrippa Lūciī fīlius cōnsul tertium fēcit) 즉 ‘루키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지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판테온의 용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내부에는 르네상스 시대 <아테네 학당>를 그린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da Urbino), 초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건축한 발다사레 페루치(Peruzzi Baldassare), 이탈리아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등의 무덤이 있다.
판테온 신전을 뒤로하고 스페인 광장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을 잇는 스페인계단(Scalinata di Trinità dei Monti)으로 향했다. 135개의 계단, 르네상스식 성당,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Obelisk) 등이 조화를 이루었다. 계단 아래에 있는 ‘난파선 분수’(Fontana sella Barcaccia)는 피에트로 베르니니(Pietro Bernini)의 작품으로 테베레강 범람 때 배 한 척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데서 영감을 얻어 건설했다고 전한다.
스페인 계단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 (John Keats)와 같은 19세기의 낭만주의 작가들이었다. 그는 <빛나는 별이여>에서 “빛나는 별이여, 내가 그대처럼 한결같을 수만 있다면, 밤하늘 높은 곳에 걸린 채 외롭지 않고, 영원한 눈꺼풀이 뜨인 채 내려다볼 수 있으니”와 같은 사랑을 노래했다. 이곳은 모든 연인이 사랑과 낭만을 충전하는 계단이었다.
특히 파라마운트 픽쳐스에서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가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Gregory Peck)과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주연한 대 히트작 <로마의 휴일>(Romna Holiday, 1953)의 촬영지였다. 사랑스러운 여인의 대명사 오드리 헵번이 천진난만하게 계단을 내려오며 사랑의 젤라토를 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오늘은 사랑의 약속 트레비 분수, 달콤한 맛의 젤라토, 외롭지 않은 난파선 분수, 연인과 같이 손잡고 올라야 맛이 나는 스페인 계단 등이 사랑을 일깨우는 행운의 날이었다. 로마는 로맨스(romance)의 준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랑을 빼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사랑이 흔들릴 때, 좋아하는 사람과의 마주침의 의미가 희미해질 때, 갑자기 다른 이성의 모습이 크게 보일 때, 배우자가 어느 순간 친구로 느껴질 때, 어디론가 떠나 푹 빠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의 행운이 기다리는 감성의 도시 로마로 가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