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마음의 창이다. 독점하고 싶으면 마음의 창이 머물게 하면 된다. 사랑하고 싶거나, 즐기고 싶거나, 보고 싶거나 락을 찾고 싶으면 마음의 창을 열면 된다. 사랑을 단념하고 싶거나 보기 싫거나 싫증이 나면 마음의 창을 닫으면 된다. 예술이 마음의 창인 이유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는 ‘예술은 시샘하는 시간을 정지시키기 위한 투쟁이다.’라고 규정했다. 예술은 시샘하게 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존재가치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시샘이라는 것은 부러워하는 것이며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것이다. 예술은 독단적이고 독점적으로 독차지하려는 지독한 마음이다.
한편 예술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나타낸다. 예술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감성의 덩어리이다. 그 용어는 사서 중의 하나인 <중용>(中庸)에서 사용된 것으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중(中)과,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용(庸)’의 틀에서 살아가는 개념이다. 예술은 희로애락의 기울어짐이 없고 불변적인 도덕적 삶을 위한 존재이다.
그런 예술에는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Amore’와 ‘愛’가 누락되어 있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켈란젤로는 “사랑이라는 것은, 그 어떤 감독하는 스승도 필요 없고, 사랑하는 자는 잠도 자지 않는다. 연락책 같은 것은 더더욱 필요가 없다.”라고 사랑을 찬양했다.
예술과 종교가 아우러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실제로 접한 대성당의 웅장함은 종교의 경건함과 예술의 투쟁성으로 구축된 것 같았다. 거기에는 거장들의 처절한 사투가 있고, 그 내용에는 성스러움이 있었다. 그렇게 예술과 종교는 지독한 사랑으로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그 중심에는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 문학, 미술, 건축, 자연 과학 등 서유럽의 문명화, 문예 부흥 등을 함의한 르네상스(Renaissance)기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암울한 종교가 예술로 승화된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었다. 종교와 예술은 사랑과 고뇌, 정의와 불의, 신앙과 미학 등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메디치(Medici) 가문은 세 명의 교황과 통치자를 배출하였고,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그리고 천재성을 가진 미켈란젤로에게 미술과 조각을 배우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리하여 〈성프란체스코전〉, 〈베드로와 안드레의 소명〉을 그린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에게 그림을 배웠고, 베르톨도 디 조반니(Bertoldo di Giovanni)를 통하여 조각가 도나텔로의 <성 조르조>상과 <다비드>(David) 상의 작풍을 배웠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을 나온 후 활동을 하는 가운데 오랜만에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아서 저택을 찾았다. 그 정원에 있는 <잠자는 큐피드> 상을 보고 지나가던 조각가가 ‘땅속에서 찾은 것처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한 말에 집착하여 미켈란젤로는 그 상과 똑같은 상을 만들어 땅속에 묻어 마치 발굴된 고대 로마 조각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위작한 <잠자는 큐피드> 상을 로마의 골동품상에게 팔았고, 공동품상은 이를 포도밭에서 발굴된 로마 조각상이라며 예술지원가이자 성직자인 피에트로 리아리오(Pietro Riario) 추기경에게 팔았다. 이후 위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리아리오 추기경은 대로하기보다는 그 조각상을 만든 미켈란젤로의 솜씨에 감탄하여 그를 로마로 초청하였다.
리아리오 추기경은 미켈란젤로의 첫 후원인이 되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 <피에타>(Pietà)상을 조각하게 하였다. 종교의 예술적 주제 중의 하나인 피에타는 슬픔이나 비탄을 의미한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작품을 함의하고 있다.
현재 성 베드로 대성당 내 오른쪽에 전시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의 포근함과 예수의 죽음을 슬프고도 애처롭게 표현했지만, 성모 마리아가 아들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옷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레이스 옷깃에는 라틴어로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라고 조각되어 있다.
종교가 예술로 승화된 <피에타>는 방탄유리로 보관되어 있다. 1972년 <피에타>를 관람하던 호주인 토트 라슬로(Toth Laszlo)가 석상을 훼손시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이 있던 토트는 ‘내가 바로 예수다, 우리 어머니는 저렇지 않다.’라고 울부짖으며 예술과 종교와 뗄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종교와 예술이 극적인 사랑으로 있었다. 예술은 종교의 섭리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 존재의 영원함을 찬양하면서 사랑의 끝을 말하지 않았다. 예술의 불변성과 종교의 영원성, 예술의 창과 종교의 창은 사랑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대성당에 있는 내 마음의 창은 고장이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