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 하마와 거위

by 청사

예술은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그 자유의지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구현된다. 예술가의 작품이 탄생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를 가진 예술가와 관련된 재능, 노력, 권력, 재력 등과 같은 요소가 충족되어 예술로 승화되어야 한다. 소수 예술가가 빛을 보고 다수가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재능, 이념 또는 색깔, 그리고 후천적인 환경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술가는 예술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데 피나는 노력과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기에 마치 돈 먹는 하마와 같다. 예술가가 불어넣은 생명을 가진 예술품은 역사와 명예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예술가와 예술품 앞에서 겸손해지는 이유이다.

나는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 입구에 빽빽하게 길게 늘어선 관객을 보고 그곳이 뿜어내고 있는 예술의 힘을 강하게 느꼈다. 티켓팅을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과 입장하려는 간절한 소망에 대해서 걸작을 만든 예술가들은 과연 그와 같은 광경을 목도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입구 앞 상단에는 이탈리아 왕국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교황령인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확보한 교황 비오 11세의 문장, 화가 및 조각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da Urbino)의 조각상이 근엄하게 반겼다.

문예 부흥의 신호탄과 촉진제 역할을 하여 르네상스의 발흥과 새 시대를 만들어 냈다는 위대함과 그들의 예술적 사투에 대해서 무조건 예찬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세계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멋모르고 점수만을 위해 죽으라 암기했던 르네상스 증거가 연출되고 있는 순간 가슴이 심하게 떨렸다.

르네상스는 미술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예술가 열전>(1550년)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재림이라고 평가한 리나시타(rinascita)에서 유래했다. 르네상스는 부활이나 재생을 의미하며,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예부흥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복원을 함의한다.

자유주의자이며 반교권주의자인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르네상스(Renaissance : re + naissance)를 ‘재탄생’으로 번역하였다. 미술사를 연구한 스위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Christoph Burckhardt)는 인문주의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신본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였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회귀하려 한 인본주의(humanism)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이탈리아가 르네상스의 중심이 됐던 이유 중 하나는 피렌체(Firenze) 공화국의 메디치(Medici) 가문의 역할이 컸다. 은행업으로 재력을 쌓으면서 정치지배를 해온 메디치 가문이 학문과 예술을 소중하게 여기고 집중적으로 장려하는 과정에서 유럽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피렌체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피렌체 공화국의 중심에 있던 메디치 가문의 창시자인 코시모 메디치(Giovanni di Cosimo de' Medici)는 동로마 제국의 철학자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Georgios Gemistos Plethon)과의 교류를 통해 동로마의 인문정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코시모 메디치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에게 철인(哲人) 정치를 주장한 플라톤(Plato)의 사상을 번역하게 했고, 아르기로 풀로스(Giovanni Argiropulo)에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철학을 번역하게 하는 등 인문주의를 활성화했다.

코시모 메디치의 계승자로 르네상스의 열렬한 후원자인 로렌초 메디치(Lorenzo de' Medici)는 천재 중의 천재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같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동로마가 멸망하면서 예술가, 학자, 건축가, 기술자 등 지식인이 피렌체로 몰려왔다. 이때 메디치 가문은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연구와 학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그것은 피렌체 공화국의 문예부흥뿐 아니라 바티칸의 문예부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예술지원과 함께 예술진흥을 꾀한 제216대 교황 율리오 2세(Papa Giulio II)는 바티칸이 기독교 세계의 수도로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문예활동과 라틴 기독교 제국을 이끌어가는 교황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정치 활동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전사 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황 율리오 2세는 면죄부를 통해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여 교황령 확대, 로마개혁, 전쟁수행, 적폐청산 등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된 신분적 위협과 바티칸에서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스위스 용병 150명으로 구성된 교황청 근위대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문예부흥을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1506년 성 베드로 대성전을 신축하도록 했다. 동시에 이탈리아 각지의 르네상스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건축물과 예술품을 만들어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었다. 그 시작이 성 베드로 대성전의 신축,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의 건립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을 설립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브라만테(Donato d' Aguolo Bramante) 등과 같은 대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특히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Creazione di Adamo)와 같은 천장화를 제작하게 하는 등 국력을 토대로 예술 투자를 했다.

모디치 가문, 교황 율리오 2세,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은 바티칸을 정치, 경제, 예술, 종교의 성지로 만들면서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을 견인했다. 특히 예술의 완성도를 높이며 촉진된 문예부흥은 모디치 가문의 재력, 교황 율리오 2세의 권력, 신들린 예술가들의 재능 위에서 광란의 춤을 추듯이 르네상스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예술가는 간데없고 그들의 혼을 담은 예술품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있었다. 찬란한 경이로움이 수많은 눈빛을 제압했고, 황당하게 매료되어 꽉 닫힌 입은 감탄사를 끊임없이 삼켰다. 그들의 예술품은 명작이라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위치에 있지 않았다. 감히 그 누가 예술가의 혼(魂)을 진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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