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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 날개 달린 쉼표

by 청사

인간은 천당이나 지옥 중 어느 곳에 가야만 하는가? 어떤 사람이 최후의 심판은 언젠가 올 것이고, 그때 심판자에 의해서 상과 벌을 받을 것이라는 계시를 믿는다면, 그는 그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최후의 심판> 도상에서 심판장의 중앙 왼쪽에는 천당이 있고 반대편에는 지옥이 있다. 지옥은 어떤 곳인지, 지옥에는 누가 어떻게 떨어지는지 등을 그림을 통해서 상상에 맡기고 있다. 다만 심판자의 심판으로 죄를 범하거나 악한 행동을 한 자들이 벌을 받아 떨어지는 곳이며, 구제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참혹한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옥에는 형벌을 받은 영혼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Charon)의 배에 실려 가고 있으며,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지옥문을 지키며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 천벌을 받아 고통과 고초를 겪고, 악마들이 아우성치는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며, 뱀에게 사로잡혀 절망하는 영혼과 차가운 육체로 대지에 속박되는 영혼도 있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모든 행동이 심판의 대상이며, 각각이 지은 범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신의 계시를 상정하고 있다. 죄는 벌로서, 벌은 육체의 고통으로, 육체의 고통은 영혼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지옥은 고통, 공포, 파괴, 불행 등이 가득 찬 무관용의 세계로 다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세계로 그려졌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를 의미하는 연옥은 <최후의 심판>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기존의 미술사적 관점이나 종교적 관점에서 논할 때, 연옥의 회화적 표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다만 추측하건대 심판의 결과 왼쪽에는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복된 사람들이 있다는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천국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연옥은 미켈란젤로가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고 고뇌하고 참회하는 곳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시대성으로 고통을 받은 신자 미켈란젤로는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되는 최후의 심판에서 스스로 참회를 통해서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을 어떻게든 존재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엄격하게 심판하므로 성인이나 선한 행동을 한 사람을 제외하면 자신을 포함해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했고, 따라서 천국으로 가는 통과역이 되는 연옥에서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회개하고 참회하여 구제될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가톨릭에 따르면, 대죄를 짓지 않았거나 용서받은 신자들의 영혼은 부활을 기다리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천국으로 간다. 악인들의 영혼은 완전한 불행을 누리는 지옥으로 간다. 그 이외 대죄를 용서받은 의인이긴 하지만 죄에 대한 보속(Satisfactio)이 남아있는 영혼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불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연옥에 있게 된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참회가 늦은 자들은 연옥에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연옥의 바깥에서 참회에 태만한 만큼 기다려야 한다. 문지기 천사는 P 일곱 개를 단테의 이마에 새겨준다. 그것은 죄를 뜻하는 패카티(Peccati)의 머리글자로 대죄가 일곱 가지이기 때문에 새긴 것이다. 단테가 각 층을 통과할 때마다 천사들이 하나씩 지워준다.

단테는 이어서 햇살을 받으며 연옥(煉獄, Purgatorio)의 불을 저장한 산에 이른다. 연옥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속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통찰함으로써 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속죄가 끝나게 되면 지상 낙원에 도달해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구상한 연옥은 가톨릭이나 단테의 <신곡>에서처럼 인간의 구제에 무게를 둔 연옥을 <최후의 심판>에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바르톨로메오의 인피 위에 그린 미켈란젤로 자신의 자화상이 도상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걸쳐 있는 연옥에서 미켈란젤로가 고뇌하고 참회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마치 구제받은 천국으로 향하는 바르톨로메오의 피부 속에서 미켈란젤로가 천국도 아니며 지옥도 아닌 연옥에서 구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상으로 해석된다.

또한 <최후의 심판>을 둘러싼 일화에서 존재한다. <최후의 심판>을 목격한 체세나(Cesena) 의전장은 성기를 그린 나체만이 있는 그림 자체가 신성한 예배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의복을 입히라고 권고를 했다. 그 말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의전장을 비난했다.

의전장이 바로오 3세에게 항의를 하자 ‘연옥이라면 몰라도, 지옥에서 나는 어떤 권한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나체상은 이미 심판을 받은 후 지옥에 떨어졌기에 구제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바로오 3세가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구원의 기회가 있는 연옥을 <최후의 심판> 도상에서 언급한 것은 연옥이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후의 심판>에는 단테의 <신곡>, <요한계시록>의 최후의 심판 예언, 가톨릭의 교리, 시대적 고통을 받은 신자로서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종교적 인식, 바로오 3세의 심판도상 등에 기초한 천국, 지옥, 연옥 등 3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서 미켈란젤로는 세 가지 세계에서 살아가는 391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각자의 독특한 육체미를 통해서 종교적 암시를 표현했다. 인물 묘사는 <아담의 탄생>에서 구현했던 것처럼 인체의 미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고, 계시의 묘사는 조각이 아닌 회화를 통해서 표현했다.

미켈란젤로는 회화를 통해서 인체의 무한한 미와 종교적 함의를 가감 없이 표출하였다. 그는 다빈치를 비판하기 위해서 ‘회화는 허구’라고 비판했으면서도 회화의 세계를 통해서 무한한 종교적 예술적 암시를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의 허구세계에는 다빈치의 회화에 숨겨진 이야기처럼 많은 독백이 포함되어 있다.

<최후의 심판>에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심판자의 모습, 천사들의 모습, 천당과 지옥의 모습, 그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 연옥의 모습 등에는 그의 신학적, 미학적, 철학적 허구가 충분히 잘 새겨져 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회화에 심고 있는 내용에는 그 누구도 간파하거나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가 죽은 1564년은 세상에서 그의 예술이 일단락 종결됐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시작한 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려진 그대로 모두 그럴 것이라는 사실적 이미지와 그 이상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허구적 이미지에 내가 갇혀있는 것은 날개 달린 쉼표처럼 자유를 잃지 않은 아름다운 구속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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